제자리 찾기
책상이 생겼다. 부모님 댁에서 존재감 없이 지내던 거였다. 글 쓰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장대 겸 책상보다는 낫지 않냐는 의견이 모아졌다. 갑자기 결정된 거라 내 집에 충분한 공간이 있을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덩치 큰 놈을 옮기는 것이 문제긴 했지만 '버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옮길까'를 고민하니 마음은 짐스럽지 않았다. 대책 없이 일단 책상을 있는 자리에서 뺐다. 덜어내고 보니 생각보다 책상이 더 컸다. 일은 벌여놓고 수습이 안 되는 가족들은 서로의 어설픔을 보며 연신 키득거렸다. 무계획이 상팔자인 건지 당황은 했지만 일은 고되지 않고 재미있었다. 책상 뒤에 숨겨져 있던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왜 진작에 빼지 않았을까를 반성하며 먼지를 털어냈다. 비워낸 공간을 깨끗하게 만드는 맛은 보너스였다.
책상을 내 집으로 운반하는 데에도 가족이 모두 달라붙었다. 중간중간에 그냥 사고 말지 왜 이 고생을 하냐는 반항의 소리가 각자의 입에서 나오긴 했지만 이미 자리를 이탈한 책상은 집을 나와 배 째고 서 있었다. 우리는 사전 계획 없이 결정을 한 대가로 배 째는 상전을 둘러업고 어디든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집에는 도착했다. 내가 생각해 둔 장소보다 옮긴 책상이 더 커서 기존에 있던 수납장을 창가 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넣었다. 힘들긴 했지만 제자리를 찾은 책상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한껏 존재감이 높아진 책상은 더 이상 덩치만 큰 놈이 아니라 듬직한 동반자였다. 한바탕 소동의 여운이 책상 속에 녹아들어 갔다. 가족들은 다시 집으로 갔고 나는 갑자기 조용해진 집에 앉아 멍하게 책상만 바라보았다. 조금 전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의 원래 책상은 화장대와 밥상을 겸한 것이었다. 학생책상만 한 크기라 화장을 할 때는 뚜껑을 열고 화장품을 꺼내 썼고, 글을 적을 때는 뚜껑을 닫고 노트북을 얹었다. 필사를 할 때는 노트북을 빼고 독서대와 공책을 놓았다. 다행히 화장대 옆에는 노트북과 독서대를 번갈아 가며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밥을 먹을 때는 둘 다 빼야 해서 하나는 바닥으로 가야 했다. 매번 물건을 옮기는 것이 일이긴 했지만 화장대는 좁은 공간에도 여러 가지 용도로 쓸 수 있는 요긴한 가구였다. 처음에는 더 낮은 책상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화장대에 대한 불만은 없이 지냈다고 생각했다.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틈만 나면 새로 옮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나도 모르게 화장대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아 괜히 멋쩍었다. 책상은 화장대 두 배 정도 되는 넓이라서 노트북과 독서대가 이웃하며 있는 것이 가능해졌다. 더 이상 컴퓨터도 독서대도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왼쪽에서 컴퓨터를 사용했다가 오른쪽으로 와서 필사를 했다. 그리고 세수를 한 후 책상을 마주 보고 있는 화장대로 가서 뚜껑을 열었다. 위에 물건이 올려져 있지 않은 화장대 뚜껑은 가볍디 가벼웠다.
책상이 들어왔는데 집안 전체가 더 넓어 보였다. 실제로 그럴 리가 없으니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 그럴 것이다. 책상 앞에서 한참을 놀다가 바닥으로 내려와 집 전체를 둘러보았다. 더 들어왔는데 여백이 더 많아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책상이 제 자리를 찾았다는 뜻은 아닐까. 똑같은 책상인데 부모님 댁에서는 군더더기였다. 책상을 빼고 나서야 집안 분위기가 가벼워졌었다. 내 집에 들어온 책상은 좀 달랐다. 존재감이 확실히 있었다.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책상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듯했다. 화장을 하는 곳, 필사를 하는 곳, 노트북을 사용하는 곳이 생겼다. 같은 공간 다른 느낌이었다. 새로 들어온 듬직한 동반자에게 내 삶의 무게를 나눠 주고 나는 좀 더 가벼워진 듯했다.
나도 내가 있을 만한 곳에 제대로 정착하며 살고 있을까. 자유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해야 할 것을 끊임없이 찾았다. 주제넘게 있고 싶은 욕심만 마음에 담아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했었다. 군더더기 같은 삶은 살기 싫었기 때문이다. 올해 6년째 자유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아직도 질문에 확답은 할 수 없다. 힘센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 힘이 센 거라는 친구가 했던 말을 믿고 싶을 뿐이다. 책상이 유난히 반짝거려 보인다. 책상도 내가 있어 듬직함이 드러나는 거라 생각한다. 서로 잘 지내보자고 속으로 악수를 청해 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지내며 조금씩 더 가벼워지는 올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