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는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더니 열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이에 누가 날 때린 듯했다. 집에 있는 몸살약을 먹고 계속 자려했는데 아파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 그냥 일어났다. 그리고 입맛이 하나도 없지만 뭐라도 먹고 힘을 내야 할 것 같아 평소에 좋아하던 호박죽을 시켰다. 샛노란 죽이 왔는데도 군침이 돌지 않았다. 입안이 까끌거렸다. 그래도 열심히 죽을 퍼서 넣었다. 내 입맛과는 별개로 호박죽은 몸에 들어가서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다. 죽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온몸에 땀이 흘렀다. 그제야 한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다음 날 아침은 첫날보다는 나았다. 열은 났지만 정신은 바로 차려졌다. 이번에는 목이 까끌거렸다. 코로나 검사도 2번을 했다. 병명이라도 알고 아프자 싶어 인근 내과를 찾았다. 오전부터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어디가 아픈지 궁금했다. 뜬금없는 동지애가 느껴졌다. 많이 아파 보이는 사람이 있어 손이라도 붙잡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혼자서 별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내 이름이 불렸다. 의사에게 내 증상을 이야기했다.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의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왜 이런 건지를 물었고 의사는 자신도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어떤 바이러스 때문일 거라며 독감 검사는 48시간이 지나야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서 해도 안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해 보겠냐는 말에 나는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3일 치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병명은 모르는데 처방전이 나오는 것이 우스웠다.
내 몸이 왜 아픈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약을 타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맞는지도 모르는 약을 먹고 확률 싸움을 하느니 이미 내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버티지 못하고 다시 나갈 때까지 몸을 만드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일단 한숨 자고 일어나기로 했다. 나는 침대 위에서 다시 꿈틀거렸다. 힘들긴 했지만 어제보다는 낫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방학이라 마음껏 아플 수 있어 마음은 편했다.
다시 일어났을 땐 입과 목이 까끌거렸다. 맛을 못 느꼈지만 몸보신을 해야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삼계탕을 시켰다. 쫄깃거리는 닭봉을 먹는데도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평소보다 더 많이 먹었다. 또다시 온몸에 땀이 났다. 몸 안에 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개운했다. 그 뒤로도 나는 계속 몸이 시키는 대로 했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생각해 보니 이번처럼 온전히 아팠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여태 열심히 살았으니 한 번쯤 아플 때도 됐다 싶었다. 갑자기 아픈 것이 훈장처럼 느껴졌다.
바이러스로 감염돼 아픈 몸은, 약하지만 쉴 새 없이 뛰는 생명력도 느끼게 해 주었다. 아픈 만큼 아프고 싶지 않은 나를 보았다. 처방받은 약 대신 영양식으로 몸을 보충했다. 그리고 점점 튼튼해지는 숙주 앞에서 끽소리 못하고 나갈 바이러스를 상상했다. 연속 이틀 동안 삼계탕을 먹었다. 몸보신하는데 삼계탕 이상의 음식을 알지 못하는 나는 보약이려니 생각하며 열심히 닭을 뜯었다. 여전히 맛은 없었지만 몸보신은 되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바이러스가 방학에 맞춰 들어와 준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수업을 하기 위해 굳이 없는 힘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입안이 까끌거리는 대로 몸에 힘이 없는 대로 그대로 있어도 되었다. 환자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입맛에 상관없이 영양을 듬뿍 입안에 넣어주는 것뿐이었다. 뭘 먹어도 맛을 잘 못 느끼겠지만 그래도 내일은 삼계탕 안 먹을 거라 생각하는 것을 보니 입맛이 조금은 돌아오는 모양이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몸이 아파 다행이었다.
아프고 나니 내 몸을 내가 책임지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의사의 무심한 눈빛에 서운함을 느꼈던 이유도 그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무능력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건강할 때 내가 나를 챙기며 살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워서 하지 못했던 산책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입맛이 빨리 돌아오면 좋겠다. 건강식이 지겨워 몸에 안 좋은 과자가 먹고 싶다는 건방진 말을 하더라도 한 번쯤은 눈감아줄 수 있을 듯도 하니 말이다. 가끔씩은 아파봐야 게을렀던 나를 반성하며 철이 드는 것 같다. 잘 아팠다. 그래도 이제 그만 아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