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스승

by 마나

24시간을 쪼개어 쓰는 사람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며칠 동안 7살이 된 조카와 함께 지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랑하고 싶은 것도 많아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고모들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응애'만을 외치던 아기가 점점 커서 할 수 있는 움직임이 많아진 것을 보며 세상에 이것보다 더 신기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작은 입을 야무지게 움직여가며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고모들이 맡은 임무는 적절한 리액션이었다. 평소의 무뚝뚝한 내 성격을 최대한 야들야들하게 만들어 꺼내보였다. 땀 뻘뻘 흘리며 종이를 접고 오늘만 남은 듯이 놀이에 집중하는 조카의 하루에 누가 되지 않으려는 고모 나름의 발버둥이었다.


종이접기 놀이가 다소 지지부진해질 때쯤 음악을 좋아하는 조카를 유혹하기 위해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내가 외워 칠 수 있는 것은 '학교 종이 땡땡땡'과 '나비야, 나비야' 그리고 '울면 안 돼' 세 가지였다. 7세 조카에게 다소 열없는 노래였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어설프게 왼손의 도솔미솔과 오른손의 솔솔랄라가 합쳐져 학교 종을 땡땡땡 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카는 벌써 7살이지만 아직 7살이기도 했다. 동요 세 곡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래 자체보다는 피아노와 드럼의 합주에 꽂힌 듯했다. 노래 수준이 조카의 드럼 솜씨와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피아노와 드럼의 합주로 한참을 놀았다. 이번에는 다행히 학교 종이 땡땡땡이 먹혔지만 다음에 만났을 땐 어림도 없겠다 싶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피아노 숙제가 내 앞에 떨어졌다. 재미가 있어 다행이었다.


'울면 안 돼'를 신나게 치다가 문득 조카가 "왜 울면 안 돼?"라고 물었다. 예전에 '울면 안 돼' 노래 가사에 감정을 억압하는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와 나눈 적이 있어 조카의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조카의 눈을 보며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숙제를 해야 하는데 하기 싫어 우는 것은 안 되지만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울어도 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둘의 차이점을 알겠냐고 물어보니 조카는 씩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이런 대화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조카는 나의 표정과 말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해맑고 동그란 얼굴 앞에서 행동과 말을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조카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하와이에 불이 난 뉴스 기사를 보며 "하와이에 불이 왜 났어?"라고 했다. 큰고모는 아직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나쁜 사람들이 산에서 불장난을 하면 산불이 나곤 한다고 했다. 그리고 불이 나면 물로 꺼야 하는데 물이 부족해서 불을 다 못 껐다고 했다. 물놀이할 때 물을 계속 틀어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로 연결을 하자 조카는 자신이 할 일을 안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씻기 전에 물놀이를 하며 물을 가지고 놀만큼만 받았다. 물을 틀 때마다 조금만 써야 한다고 말하는 조카 앞에서 고마움과 책임감을 느꼈다. 어떤 것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조카는 거울 같았다. 나는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되돌아보게 했다. 작은 스승이었다.


연비가 좋지 않은 고모들은 번갈아가며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조카의 24시간을 꽉 채워줬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조카는 마지막 날 집에 가기 싫다는 말로 할아버지 집에 노력상을 주었다. 고모들의 손을 꼭 쥐던 작은 손아귀를 느끼며 헤어짐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조카를 보았다. 나는 누군가와의 헤어짐에 이렇게 최선을 다했던 적이 있었던가. 정성을 다하는 헤어짐 앞에 작지 않은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7세 아이에게 헤어짐의 슬픔은 어떤 의미일까. 다음 날 무사히 유치원에 갔다는 동생의 메시지가 반가웠다. 유치원에 잘 다니면서도 가끔 할아버지 집이 그리울 때 실컷 울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동그란 얼굴이 눈앞에 삼삼히 그려졌다.


동생과 조카를 배웅해 주고 돌아오니 집안에는 아이의 체취가 아직 남아 있었다. 어른의 헤어짐은 겉과 속이 같지 않다. 나는 울면서 편안하게, 편안하면서도 텅 빈 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웠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서 사촌들과 종이로 된 문을 손가락으로 쏙쏙 뚫으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해맑은 우리들을 보며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편안하게 누워 있으니 할아버지의 표정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 말을 울고 있는 언니에게 슬쩍해 주었다. 언니도 울다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마음 여린 큰고모의 헤어짐은 나와는 또 다를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슬픔을 짊어지고 산다. 각자의 몫이므로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순 없지만 그래도 옆에서 가벼운 농담으로 한 번쯤 웃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함께 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카는 잘 크고 있고 우리는 잘 나이 먹고 있다. 아무래도 조카의 호기심이 나에게 온 듯하다. 그것을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은 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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