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운동을 하러 가셨다. 거의 10일 만이다. 밖으로 나가시며 문을 여닫는 소리가 왠지 새삼스러웠다.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질 때, 그제야 그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거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늘 이럴 때만 내가 가진 무심함을 돌이켜 보게 된다. 방학이 되고 식구들과 지낸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아침 소리가 들렸다. 식구들은 각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한다. 양치를 끝내고 신발을 신고 나면 문고리를 잡고 닫혔던 문을 연다. 보통은 그제야 하루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를 가야 할지 되뇌며 문을 열고 닫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로 집을 나서는 것이다. 방학이라 여유로운 나는 오늘만큼은 식구들의 아침 문소리를 대신해서 기억하고 싶었다.
아빠가 10일 정도 아프셨다. 원인도 모른 채 얼굴이 붓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지 알 수 없어 식구들은 모두 우왕좌왕했다. 며칠 동안 안과, 피부과, 감염내과 등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고 연조직염이라는 병명을 알기까지 아빠의 얼굴은 점점 더 붓고 열이 나야 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열부터 내렸어야 했는데, 진료 과목마다 병원이 다 달라 이 병원에서 처방하는 대로 보고 있다가 증세가 악화되면 다른 병원으로 바꾸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헤맨 끝에 해열제와 항생제를 맞고 아빠의 얼굴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제법 부기가 빠진 후에야 아빠는 보톡스를 맞은 것 같다며 거울을 보고 웃으셨다.
그리고 오늘 다시 운동을 하러 나가셨다. 열이 나는 운동은 아직 좋지 않지만 집 밖을 나가고 싶으신 듯했다.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약간의 열과 약간의 답답함 사이에서 스스로 타협하실 거라 믿었다. 밖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시는 아침 소리를 들었다. 가볍고 경쾌한 음악 같았다. 문을 열고 어디를 가시든, 무슨 운동을 하시든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가신다는 사실만으로 아빠의 오늘은 시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들렸던 경쾌한 소리가 아빠의 하루 전체를 미리 보여주는 듯했다.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오랜만에 했다. 다녀오겠다는 인사보다 더 좋았다. 오늘도 여전히 폭염이 계속되는 날이긴 하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식구들의 일상도 다시 시작됐다. 아무 일 없는 듯 평소와 같은 아침이지만 식구들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건강한 움직임 같아 오늘따라 더 반가웠다. 한 명씩 각자 시간에 맞춰 문을 열었다. 내가 가장 마지막이었다. 내가 낸 아침 문소리를 들으며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내가 무심히 넘기고 있는 것들이 없는지를 살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들 속에 내 어리석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예민하지만 또 둔하다. 오늘처럼 아침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예민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예민함을 스스로 너무 예민하지 않게 받아들일 정도로 둔했으면 한다. 예민함과 둔함 사이를 잘 조율하는 것이 어리석음으로 일상의 기쁨을 놓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바깥은 여전히 덥다. 폭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은 밖을 걷는 내내 덥다는 생각보다는 가볍다는 느낌이 더 들었다. 이제 곧 방학이 끝나고 다시 내 집으로 돌아와 출퇴근을 할 것이다. 식구들이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와서 가야 할 내 마음도 한결 가볍다. 유난히 아픈 사람들이 많았던 올여름도 끝나간다. 아픈 것은 싫지만 아픈 시간도 살아가는 데 있어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오늘 하루 식구들이 건강한 아침을 보낸 것에 감사한다.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듯하다. 벌써 저녁이다. 잘 나갔으면 잘 들어올 것이다. 아직 방학이라 같이 저녁 먹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