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을 위해
나는 출근 전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밖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 2분이나 더 남았다며 애써 시계를 보지 않고 창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럴 때 마음도 몸과 함께 따라오면 좋을 텐데 내 마음은 늘 반대다. 조금 전에 2분 남았었으니 이젠 1분 30초 남았겠다고 창밖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나는 시계 속으로 더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그 소중한 2분을 초단위로 느끼며 다 허비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2분 전보다 더 피로해진 몸을 끌고 집을 나섰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몸과 기댈 곳이 없어 더 빨리 움직이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불편하게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에게 2분도 주지 않는 내가 야속했다.
현재 나는 무기력한 상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찾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미움받지 않기 위해 보낸 시간들이 한꺼번에 되돌아왔다. 왜 나는 눈치를 보며 살았을까. 왜 좀 더 내 인생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을까. 미친 듯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았다. 의지하고 싶고 외롭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느껴졌다. 부끄러웠다. 열심히 산 이유가 고작 남의 인정이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초라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며칠 밤잠을 설쳤다.
반항적인 마음과는 달리 내 몸은 여전히 습관적으로 남을 의식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어느 날에도 누군가가 던진 농담에 일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웃으며 반응하는 나를 보았다. '친절한' 동료로서의 내 모습 뒤에 버거워하는 내가 보였다. 가족들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착한' 딸, '착한' 동생, '착한' 고모가 맞았다. 나의 거짓된 '착함' 뒤에는 늘 억울함이 따랐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변화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게 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여태 해왔던 행동과 달라 조금 부자연스럽게 보이더라도 혼자 있을 시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우선 학교 점심 급식을 끊었다. 사람들이 급식소에 내려간 사이 나는 혼자 남아 한숨을 쉬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30분의 시간이 내겐 쉼터였다. 집에서 싸 온 음식을 먹으며 급식소에서 정해준 메뉴가 아닌 내가 먹고 싶은 점심을 먹는다는 사실도 스스로에 대한 보호본능을 좀 더 가지게 해 주었다. 몸에 좋은 음식,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공부를 하고 요리를 했다. 지금은 내 몸에 맞게 영양가가 골고루 들어간 식습관을 찾는 중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움직여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가족들과도 계속 이야기 중이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 나는 그저 피곤하다고 이유를 댈 뿐 정확히 왜 이러는지 알지도 못한 채 계속 말을 했다. 나도 가족들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여태 그러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화내고 울고 미안해하고를 반복했다. 지금도 내 삶을 위해 가족과 떨어지고 싶은 마음과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같은 선상에 놓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을 뿐이다. 가족들은 계속 내 말을 들어준다. 언젠가는 꼭 그 마음이 고마움과 미안함이 아니라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며칠 전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현재 내 삶이 내가 쓴 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거짓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흔들리는 현재의 내 모습을 뺀 글은 충분히 그리 보일 수 있을 듯해서 그만두었다. 집에 와서 최근에 적은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글 속에서 흔들림을 뺀 나는 좀 더 단정해 보였다. 모두가 나였지만 각자의 모습만으로는 온전한 나일 수 없었다. 흩어져 있는 나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은 글들을 여러 갈래로 묶어 연결시켜 보았다. 현재 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그제야 보였다. 그건 바꿔 말하면 무기력이 내 일부일 뿐이므로 너무 몰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글속 모두가 나였다.
어떤 일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건 그 일이 내 속에서 이미 정리가 된 상태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은 정리되지 않은 나를 글로 표현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이 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친구의 말이 나를 건드렸다. 그런 글 따위는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했다. 지금 나는 정리되지 않은 마음도 그대로 적어 보는 중이다. 익숙하지 않은 글이라 발행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자기 검열을 할 듯하지만 그래도 일단 적는다. 나는 지금 동굴 속에 있다고, 더 이상 나 스스로를 방치하는 순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중이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