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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r 26. 2023

누런 봄

미세먼지

창문을 열었다. 며칠 째 산이 흐렸다. 나와 산 사이에 끼어 있는 누런 미세먼지가 제법 두툼한 모양이다. 이틀 전 고글을 끼고 출퇴근하는 중국 북경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심한 황사로 눈을 뜰 수 없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 고글을 착용했다.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봤던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기 위해 길거리에서 고글을 끼고 다니던 모습과 비슷한데 그때와는 달리 하나도 웃기진 않았다. 앞으로 우리는 얼굴에 뭘 더 얹고 다녀야 살 수 있을까.


이틀 전 북경에 있던 황사가 내려와 오늘 아침 내 눈앞에 있었다. 나도 고글을 살 날이 곧 올지도 모를 일이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다. 학생들과 걷기 연습을 해야 해서 비가 안 왔으면 좋겠지만 누런 창밖 풍경을 보니 비가 와야 할 듯하다. 점점 걷기도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요즘은 영어 수업보다 걷기 수업을 대비하기가 더 힘들다. 수업 준비에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힘은 자연 앞에서 이렇게도 작은 것일까. 


걷다 보면 나뭇가지에 꽃이나 어린잎들이 매달려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것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나오는 건지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나는 겨우내 입었던 옷을 아직도 간간이 입고 있는데 나무와 꽃은 벌써 봄옷을 입고 있다. 문득 입고 있는 겨울옷이 원래 색보다 더 우중충하게 보인다. 내가 옷을 입고 있는 건지 옷이 나를 덮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갑자기 드는 옷의 무게감이 색감만큼 무겁다. 유행 따라 옷을 바꿔 입진 못하지만 계절에 맞추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 조만간 옷정리를 해야겠다.


봄을 따라 황사도 따라온다. 산뜻함을 마음 놓고 충분히 즐길 수 없다. 내 옷에는 미세먼지가 얼마나 많이 묻어 있을까. 옷에 끼어있을 미세먼지를 생각하니 살펴보지 않아도 새싹 위에도 수북할 것이라는 걸 알겠다. 인간이 어리석어 미세먼지가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라면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인공적인 맛이 나는 공기는 누가 봐도 인간 탓이라 몸도 마음도 불편하다. 그리고 누런 공기를 피할 곳이 없어 온몸으로 마신다. 눈이 따갑고 머리가 아프다. 인간보다 더 어리석은 종이 있을까. 그에 비해 새싹은 여전히 예쁜 연둣빛이다. 강한 생명력은 고도의 기술이 아니라 연약한 새싹에서 느껴진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나를 포함한 어리석은 인간이 좀 더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을까.

<이혜영 작품>

매일 아침 일어나면 창문을 열지 말지 고민이다. 밖에서 온몸으로 미세먼지를 받고 있는 나무와 꽃들도 안쓰럽다. 내 몸에 붙은 미세먼지는 다 털리지 않은 채로 곳곳에 붙어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그것이 쌓여 겨울옷의 무게와 색깔이 되었을 것이다. 옷은 세탁하면 다시 뽀송해지겠지만 코와 입으로 들어온 작은 적들은 차곡차곡 내 몸 안에 쌓이고 있을 테다. 모델이자 가수였던 이혜영이 그린 그림이 생각난다.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없애고 싶어 자신의 뇌를 꺼내 씻어내는 그림을 그렸었다. 나도 물이라도 넣어 내 안을 씻어버리고 싶어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본다. 누런 하늘에 흐릿한 산이 보인다.


4월이 되면 나는 학생들과 환경 수업을 하려 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걷기 수업을 걱정하며 환경 문제를 떠올렸다.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하며 사는 것도 아니면서 환경 수업을 한다는 것이 미안하지만 한 사람의 힘이 생각보다는 작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고 싶어 힘을 내어 본다. 어설픈 수업이나마 쌓이고 쌓이면 미세먼지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좀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늘이 누렇다. 지금 내 마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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