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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n 25. 2023

십 년 전 친구

그림과 기억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양이와 나는 마주 보며 한참을 있었다. 검은 고양이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아 나를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 수 없다. "네 모습 본 적 있어?" 나는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춰 길에 주저앉아 계속 같은 질문을 했다. 검은 털과 노란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이 있는 고양이 같진 않았는데 털의 윤기가 마치 좋은 트리트먼트를 사용한 연예인의 머릿결 같았다. 자세는 도도했다. 그날은 분명 폭염이 며칠 이어지던 한여름이었는데 그늘진 산속에 자리를 잡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까슬까슬한 분위기를 내며 땀에 찌든 나를 보고 있었다. 내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우리의 언어가 다른 것이 소통할 수 없는 이유의 다는 아니었다. 우연히 마주친 산고양이는 매력적이었고 나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부러우면 진 것 아닐까. 친구관계는 대등할 때만 가능하다 생각한다. 나는 아직 고양이와 소통할 자격이 없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내가 먼저 일어섰다. 


10년 전 여름방학 때 일이다. 절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청도에 있는 운문사와 그 위에 있는 사리암을 가기로 했다. 사실 그전에 사람들과 함께 갔던 곳이었는데 차 안에서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기엔 절로 이어진 길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정갈한 절의 이미지와 산길이 마음속에 계속 남았다. 폭염이었지만 그땐 나도 지금보다는 에너지가 많았나 보다. 집에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젊은 객기를 핑계 삼아 홀로 길을 다시 나섰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다들 차를 타고 절 앞까지 이동했지만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운문사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었다. 생각보다 크게 덥지 않았다. 내 발로 그 길을 걸으며 그제야 뭔가가 채워지는 듯했다. 땅을 꾹꾹 밟으며 길과 나무를 살폈다. 산속 냄새가 났다. 시원했다.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운문사, 사리암까지 그리고 다시 운문사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며 총 7시간을 걸었다. 운문사에서는 108배를 했고 사리암에서는 절밥을 얻어먹었다. 사리암에는 3번 오면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는 말이 있다. 밥을 얻어먹으면서 소원까지 바라기엔 염치가 없어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시원한 길을 여유롭게 걸으며 주변을 구경했다. 차로 왔을 땐 놓쳤던 길 위에 숨은 보석들이 다 보였다. 더군다나 절밥까지 얻어먹고 나오는 길은 든든하기까지 했다. 


내려오는 길에 검은 고양이를 만났다. 지나가는 차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길이었다. 아무리 시원한 산속이라도 한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땀범벅이었다. 절을 하고 난 후라 다리도 후들거렸다. 고양이가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놀랐지만 고양이는 차분했다. 고양이의 눈빛이 내게도 전달되어 나도 덩달아 차분해졌다. 우리는 서로를 계속 쳐다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고양이는 자신의 모습을 알까.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해주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침묵을 깨고 물었다. "네 모습을 본 적 있어?" 고양이는 답이 없었다. 내 마음대로 내 언어로 하는 말이었다. 도도한 친구가 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소리를 내진 않았다. 나도 혼자 피식 웃으며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고양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십 년이 더 지났다. 검은 고양이를 볼 때마다 운문사 가던 길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마 전 엄마가 고양이를 그렸다며 보여주던 그림에서 그 고양이를 다시 마주 했다. 엄마의 그림 속에는 윤기 나는 검은 털에 노란색 눈동자가 그대로 있었다. 고양이를 그대로 쳐다보았다.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부러움 대신 편안함을 가지고 그를 볼 수 있기 위해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었다. "네 모습을 본 적 있니?" 대답은 거의 부정적이었다. 더 이상의 말을 걸진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대화를 끝냈다. 나는 내가 하루는 우습고 하루는 멋쩍고 하루는 슬펐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질문을 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내가 계속 궁금했나 보다. 


오늘 엄마가 그린 고양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오는 내내 옆좌석에 앉아 있는 그림이 신경 쓰였다. 어디에 두면 좋을까. 둘 곳이 마땅찮아 집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침대 머리맡에 두기로 했다. 매일 봐야 하는 노란색 눈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을 보니 십 년이 그냥 지나간 것은 아닌가 보다. 검은 털과 노란색 눈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검은 고양이를 왜 기다렸는지 생각했다. 그땐 의식하지 못했지만 검은 고양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혹시 나는 나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무거워 오랜 시간을 어둡게 지냈던 나에게 검은색은 매력적인 색이라고 고양이는 노란 눈으로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저 고양이가 나일까. 아직은 도도한 눈이 꿈 깨라고 말하는 듯도 하지만 어딘가에 나의 매력도 있을 테니 희망은 버리지 말자고 마음먹는다. 아무튼 반갑다.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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