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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l 08. 2023

빛과 어둠은 하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출근길에 학교 계단 틈 사이로 노란 꽃이 핀 것을 보았다. 혼자 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두려 하는데 해가 뒤에 있어 내 그림자가 사진 속에서 걸리적거렸다. 그림자를 없애자니 내가 없어져야 했고 내가 없어지자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림자만 떼어낼 수는 없을까. 과학 기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그림자만 떼어낸 '나'가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초엽 작가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림자 없는 내가 있다면 '나'는 사진을 찍으며 오늘보다 더 행복했을까. 내 안에 있는 어둠을 거둬내면 더 밝은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책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집이다. 공상과학소설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배경이 미래일 뿐,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완벽하지 않으면서 완벽해지려고 노력하고 상처 주고 상처받으면서도 함께 했다. 진화론에 따르면 자연은 강한 자만 살렸다고 하던데 이 이론은 정말 맞는 것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약한 모습은 비슷한 것 같아 의심이 간다. 더군다나 우리가 가진 뇌는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의 것과 거의 비슷하잖는가. 소설 속 우리의 미래 모습도 별다른 것 없어 이야기가 낯설지는 않았다. 우리는 약했고 약해서 함께 살아갔다.


선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해당되는 악이 있다. 모든 것이 양면이 있고 두 면이 모여야만 하나가 된다. 사람의 인생도 그렇다. 우리는 나쁜 면을 없애고 좋은 점만 남겨두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림자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빛만 남은 세상에서 빛이 더 이상 의미가 있을까. 무미건조해진 빛을 보며 사람들은 오히려 생기를 잃을지도 모른다. 사랑도 그러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생겨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받을 용기, 미움받을 용기, 내 마음에 대한 남의 무관심을 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말은 곧 사랑은 상처, 미움, 그리고 무관심을 그림자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작가는 이런 사랑의 양면을 릴리의 인생을 통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릴리는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신인류가 아니라,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평범하지 않게 태어난 릴리는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이를 딸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만들었다.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교과서에서만 배울 정도였다. 릴리는 그림자 없이 사랑만 있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행성의 아이들은 사랑하기 위해 용기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안전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웠지만 무의미했고 행복했지만 행복한 이유를 몰랐다.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지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릴리의 행성 아이들이 지구로 여행을 간 뒤 돌아오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살고 있는 행성에 비하면 너무 무질서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에 남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릴리가 없앴던 삶의 그림자가 지구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완전한 인간이 지켜내는 불안한 사랑은 힘들지만 '완벽한' 행성을 버려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온전한 사랑은 그림자를 포함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도 사랑의 그림자를 빼버린 행성에서의 사랑이 더 이상 의미 없음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둠의 존재 이유는 빛에 있었다. 둘은 함께 있어야 비로소 하나가 됐다.


학교 계단 앞 꽃을 예쁘게 찍기 위해 나는 몸을 여러 각도로 움직였다. 그러다 결국 그림자가 카메라 속에 보이지 않는 적절한 어느 지점을 찾았다. 찍은 사진을 보니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어쩌면 내 그림자는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꽃이 제일 잘 찍히는 각도를 찾아주기 위해 앞에서 얼쩡거린 건지도 모른다. 내 그림자는 내가 있어서 있다. 어둡다고 하여 떼어냈다면 오늘 아침이 그리 재미있진 않았을 것이고 찍은 사진이 크게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빛이 있어 존재하는 어둠. 나는 어둠을 중심으로 잡고 빛을 움직여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었다. 일상의 작은 행복이 사진 속에 가득 들어 있었다. 빛과 어둠이 잘 어우러진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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