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 함께 읽기
"전 상관없어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지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이다. 학생들의 입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 저 말들의 속뜻은 무엇일까. 그 학생이 아닌 이상 확실히 의미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흘려들으면 안 될 것 같아 고민이 됐다. 해가 거듭될수록 듣는 횟수도 늘어났다. 몇 년 전만 해도 사춘기 학생들의 특징이겠거니 하고 넘겼었는데 지금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건 단지 개인의 특성이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곰곰이 생각하다 혼자 답답해지면 학생들에게 무슨 뜻인지 물을 때도 있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말한 사람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한 말이라는 그 말. 이것을 어떻게 소화시켜야 할까.
나름 추리해 보면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나의 의견을 접는다', '그 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 '지금 집중하고 싶지 않다' 혹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등이 떠오른다. 적어도 나는 살아가면서 저런 말을 할 때 4가지 의미 중 하나를 담았었다. 학생들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생각한 끝에 무기력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이런 내 추리를 학생들이 알게 되면 '나는 그랬으니 너도 그럴듯하다'라는 '라떼'의 부르짖음이라고 놀려댈지 모른다. 내가 가진 논리의 허접함과 학생들의 반응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방학 때 안 들리던 말이 개학 후 다시 들리기 시작하자 이쯤 되면 함께 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교사는 수업을 통해 학생에게 대화신청을 한다. 2학기 심리학 시간을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책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를 소개했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상관없어'와 '아무거나'에 대한 각자의 의미를 찾아보자고 했다. 무기력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해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의외로 학생들은 무기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책은 스스로를 직면하는 것에서부터 무기력을 알아가게 했다. 우리는 책을 읽고 각자와 닮은 부분을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객관적으로 내가 나를 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무엇이든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습관이 들면 스스로를 볼 때도 점점 그렇게 된다는 책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비슷한 경험을 최근에 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1학기 때 수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계속 애쓰다가 무기력을 느꼈던 적이 있다. 지금 되돌아보면 열심히 수업을 준비한 것 같은데 그때 나는 그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수업 중 학생들의 반응만을 보고 있었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은 수업은 그다음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나를 괴롭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괴로움을 등에 업고 새로운 수업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괴로움이 점점 무기력으로 변했다. 퇴근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영상을 봤다. 책 제목 그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였다. 거울을 보듯 책을 읽었다. 몇 달 전 내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며 그때 수고 많았다고 나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예아트는 책에서 무기력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정해진 시간 동안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기가 눈에 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최진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교수님은 아침마다 명상하듯 자리에 앉아 스스로에게 세 번 외치는 말이 있다고 했다. "나는 곧 죽는다!", "나는 곧 죽는다!", "나는 곧 죽는다!" 그 말을 들은 지인이 굳이 아침부터 기분 좋지 않을 말을 왜 하냐고 물었다. 교수님은 인생의 끝을 생각하면 지금 현재 쓸데없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군더더기를 없애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표현이 다소 강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교수님 이야기는 당장 퇴근하는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오늘 하루 일하면서 생긴 찝찝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학교를 나서며 털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이지만 죽음 대신 조금 완화된 표현을 찾아봐야겠다. 유한한 나의 시간을 무한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 또한 내가 무기력해질 때 나를 다잡을 장치로 꽤 좋겠다 싶다.
인생에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어 지금 무기력할 틈이 없다는 이상의 장난 섞인 말을 되새겨본다. 거기에 무기력하고 싶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저자의 말을 섞어본다. 사람마다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살면서 우리는 원치 않은 무기력을 몇 번은 경험할 것이다. 학생들의 '상관없음'과 '아무거나' 속에 무기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는 각자의 힘이 생기진 않을까. 책을 거의 다 읽어간다. 학생 몇 명이 '그런데'라는 말을 뒤에 붙여 생각을 바꿔보자는 내용을 일상에 사용해 봐야겠다는 말을 했다. 말속에 움직임이 느껴졌다. 무기력의 힘이 빠질수록 '상관없음'과 '아무거나'도 같이 줄어들 수 있을까. 수업이 끝나가지만 여전히 정답은 모른다. 어수선한 요즘, 교사가 그리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행복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수업을 하고 글을 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