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길
오늘도 가을이다. 최근엔 창문을 열어놓고 수업을 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안에서 책만 보고 있는 우리들의 뺨을 간지럽혔다. 교실 안에서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밖은 어떨까. 17살 학생들과 그들과 함께 사는 좀 더 늙은 교사들은 무의식적으로 수업 중 창밖을 계속 쳐다보곤 했다. 교실 안에서 책으로만 가을을 배우고 있는 바보 같은 우리가 안타까워 바람은 좀 더 세게 뺨을 때리는 것도 같았다. 우리는 며칠 의논을 한 끝에 금요일 오후는 학교 뒷산 정상으로 산행을 가보기로 했다. 매주 1시간 30분씩 산을 탔기 때문에 산 자체가 어색하진 않았다. 다만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약 4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므로 이를 학생들이 즐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금요일 아침, 오전 수업 준비를 위해 교실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오후 산행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이 올라왔다. 내가 학생들을 이끌고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을까. 안전하게 교실에 있으면 되는데 괜히 밖에 나가자고 말한 내 입이 방정이다 싶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일은 저질러 놓고 툴툴거리고만 있는 게 느껴져 정신을 차렸다. 걱정을 하든 후회를 하든 오후 산행은 정해져 있는데 지금 하는 생각이 무슨 소용이지 싶었다. 5시간 산행에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것은 학생들이 아니라 나의 앞선 걱정은 아닐까. 익숙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함은 지겨울 정도로 낯익은 교실과 대비되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오전 수업을 끝내고 우리는 각자가 먹을 김밥을 사서 산으로 출발했다. 여전히 걱정이 많았던 교사는 속으로 산을 좀 타는 학생 2명만 정상에 데리고 가고 나머지는 중간쯤 되는 곳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학생들의 상태를 봐서 판단하기로 했다. 산은 추울 수가 있으니 겉옷을 꼭 챙겨 오라는 나의 강한 당부를 잊지 않고 학생들은 따뜻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점심을 먹을 장소에 도착하자 따뜻함은 곧 더움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김밥을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내 옷차림은 두꺼운 겉옷은 가방에 넣은 반소매 차림이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걸을 코스에 대한 정보를 미리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 앞으로 1시간 정도 걸을 코스가 가장 힘들 거라 말해주었을 때 학생들은 특유의 톡톡 튀는 입담으로 앞으로 힘들 시간을 웃음으로 시작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제법 잘 걸었다. 내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서 걸을 때도 내 시야를 벗어나지 않을 만큼 따라와 주었다. 몇몇은 힘들어하지도 않아 선두에 세웠다. 그리고 나는 제일 뒤 설화와 함께 걸었다. 선두는 길이 헷갈릴 때는 나에게 연락을 하거나 더는 움직이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우린 제법 잘 맞는 한 팀이었다. 산행하는 동안 내 마음이 점점 걱정에서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신선한 가을바람이 산의 기운과 더해져 더없이 시원했다. 역시 가을은 밖에서 직접 느껴야 배울 수 있는 거였다.
설화와 걸으며 음악 이야기를 했다. 설화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요청했더니 부끄러워 음악을 틀지 못했다. 나는 웃으며 부끄러움의 이유를 물었다. 설화는 내가 그 음악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몰라 걱정이 돼서라고 했다. 사춘기 소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져 고마웠다. 나는 음악이 아니라 설화가 궁금해서 같이 듣자고 한 거라 말했다. 나에겐 그 음악이 어떤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단지 설화의 음악 취향이 궁금할 뿐이라 했다. 그리고 음악을 함께 들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설화가 용기를 내어 음악을 틀어주었다. 처음 듣는 일본 음악이었다. 설화가 말한 하이라이트 부분을 듣고 난 후 한참을 이야기했다. 우리들의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워진 듯했다. 설화의 걱정도 나의 걱정도 바람 따라 흘러갔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에 올라갔더니 학생들이 들고 있는 겉옷을 내게 보이며 하나도 안 춥다고 툴툴거렸다. 내가 봐도 그 옷은 두꺼워 보였다. 나의 겉옷도 구겨진 채 가방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이럴 땐 빠른 사과가 답이다.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미안하다고 말하고 슬쩍 화제를 돌려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지금 발의 상태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나는 학생들의 무릎이 걱정되어 살살 내려오라고 연신 잔소리를 해댔고 학생들은 나와의 나이 차이를 들먹이며 나의 무릎만이 걱정임을 알려주었다. 나이를 먹은 건 왜 장점이 되지 못하는 거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사실이라 아무 말 못 하고 대신 무릎에 대한 잔소리를 계속하는 것으로 복수를 했다. 그렇게 12시 20분에 시작한 우리들의 산행은 4시 30분에 학교에 돌아오는 것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다.
몸의 피곤함과는 달리 퇴근하는 마음은 가을바람처럼 시원했다. 오늘 하루 동안 내가 미리 했던 걱정 중 실제로 일어났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걱정 대신 좀 더 믿어줄 순 없었을까. 산행 중 이야기 끝에 학생들에게 내가 한 걱정을 고백했더니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별걱정을 다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학생에 대한 걱정과 믿음 사이에서 늘 고민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사가 학생과 함께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가끔 잘 판단이 서지 않는 날엔 혼자 고민하지 않고 학생들과 좀 더 이야기해 봐야겠다. 그리고 그에 앞서 내 결정에 대한 믿음도 좀 더 가져야겠다. 역시 가을은 교실 밖에서 배우는 것이 맞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