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사 수업을 들었다. 아직까지 일제강점기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객관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역사는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을 갖는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수업에 집중했다. 우리는 3시간 동안 광복 직후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에 파묻혀 있었다. 소설 <철도원 삼대>에서 신금이는 그 당시 1년은 10년과도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시기라는 뜻이었다. 일본은 왜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인지 우리나라는 왜 분단이 된 것인지 좀 더 자세하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들은 후 배운 것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미흡하지만 글로 남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연결되어 우리의 역사가 다음 세대에게 있는 그대로 잘 전달되면 좋겠다.
'광복'의 사전적 의미는 '빼앗긴 땅과 주권을 도로 찾음'이란 뜻이다. 우리나라 광복절은 8월 15일. 1945년 그날에 조선은 정말로 일본으로부터 다시 자유로워졌을까. 라디오에서는 일본 천황인 히로히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쟁을 종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누구와의 싸움을 종전하겠다는 건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35년 간의 일제강점기가 끝났다는 사실은 일본 천황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몇 번을 되물어야 믿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자료를 찾아보면 일본의 '무조건 항복' 날짜는 8월 15일이 아니라 9월 2일이다. 그들에게 조선은 항복할 대상이 아니었다. 일본은 전쟁 직후 조선에서 계속 머무르며 미국을 기다렸다. 조선도, 소련도 아닌 미국에 항복을 하기 위해서였다. 9월이 되어 미군이 들어왔다. 미군은 일본으로부터 인수인계 하듯 조선을 점령했다. 일장기가 내려가고 성조기가 올라갔다. 주인이 바뀌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8월 15일 이후 조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정부를 세우기 위해 건국준비위원회(줄여서 '건준')가 만들어지고 조직이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져나갔지만 미국은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의 포고령에는 건준뿐만 아니라 조선인이 세운 일체의 단체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 당시 미국이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광복이 되고 조선 사람들은 친일파 처단을 위한 절차를 마련해 갔다.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줄여서 '반민특위')를 만들어 법을 제정해 그들을 벌하고 역사를 다시 바로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반민특위법은 1948년에야 비로소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것은 광복 후 3년 동안 친일파들은 아무런 죗값을 받지 않고 지냈다는 뜻이었다. 친일파와 손을 잡은 이승만은 친일파 숙청 작업을 반대했다. 미군정도 포고령을 발표하여 기존에 일하던 자들을 그대로 일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이 친일파였다. 경제와 민생의 안정이 우선이지 역사 청산이 급한 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친일파 숙청 작업이 오히려 민족 간의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비난했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고문기술자였던 노덕술 등이 반민특위에 잡혀가자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습격해 일하던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자료를 압수했다. 그리고 반민특위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던 김구가 암살됐다. 친일파에 대한 처벌은 서서히 유야무야 되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는 그렇게 고스란히 사라졌다. 그리고 친일파는 다시 권력을 잡았다. 북한은 친일파 숙청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였으므로 북쪽에 있던 친일파들까지 대거 남쪽으로 내려와 힘을 합쳤다. 그 뒤 발발했던 한국전쟁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은 정말 쏜살처럼 흐른다. 그간 우리는 세월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 2023년 현재까지도 한국은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는 서로를 혐오하는 관계가 계속되고 있고 한국 내에서는 대전현충원에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함께 묻혀 있는 꼴을 보고 있다. 1945년에 있었던 문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수업을 들으며 여태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살기 바빴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모르는 것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무지와 무관심은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는 최적의 환경 조건이 맞았다.
이쯤 되니 한 번쯤 묻고 싶다. 한국은 과연 광복을 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약하다. 아직 청산되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가 우리 사회에 널려 있다.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제대로 배우지 않는 이상 현재 스스로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곧장 우리의 미래로도 이어진다. 역사를 알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생기고 함께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좀 더 독립된 나라에서 좀 더 자유로울 나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