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
'계모'하면 떠오르는 것은? 콩쥐팥쥐
'몽골'하면 떠오르는 것은? 초원
'전라도'하면 떠오른 것은? 5.18.
답을 쓰는데 3초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단어를 다 적을 시간도 없어 초성만 적고 넘어갔다. 열심히 3초를 쪼개어 쓴 후 11명의 답을 하나씩 공유했다. 나와 답이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어서 '계모'에 대한 영상 하나를 보았다. 콩쥐팥쥐, 백설공주, 신데렐라, 장화홍련전을 읽은 아이들은 대부분 계모를 송곳니가 크고 인상을 쓰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현재 10가구 당 2가구가 재혼 가정인 것을 고려할 때 이런 동화를 읽어주어도 될지 고민하는 부모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계모들이 모여 새로운 동화책을 만들었다. 그들과 자녀들의 실제 이야기였다. 새 동화책을 읽은 아이들의 그림일기 속에는 계모에 대한 그림이 바뀌어 있었다. "서로 닮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최고의 짝꿍"이라 표현한 한 아이의 일기가 인상적이었다.
2주에 걸쳐 부산 시청자 미디어 센터에서 오신 강사 분으로부터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련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의 목표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편견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었다. 의도된 메시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하는 매개체는 모두 미디어였는데 인터넷, TV뿐만 아니라 내가 입고 있는 옷, 안경, 물통 심지어 나 자신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계모'의 사례와 같이 한 단어의 프레임에 갇힌 사고는 고정관념을 갖게 하고 이는 확증편향적 사고(내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로 이어진다고 설명해 주셨다. 백설공주를 읽은 아이가 현실에서 처음 새엄마와 마주하게 된다면 그 순간이 마냥 편안할 수 있을까. 그 아이를 바라보는 계모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재혼 가정의 이런 어려움은 누구 탓일까.
아이가 가진 계모에 대한 편견은 아이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계모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상황에 책임져야 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는 이상,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좀 더 확장시켜 보면 알고리즘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관심 있어하는 정보만 선별하여 보여주는 알고리즘은 우리를 맞춤형 정보 속에 가두고 확증편향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 나는 수업을 들으며 '계모'를 생각하는 수준이 처음 그 단어를 배운 유치원 때 그대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고, 몽골의 초원만 생각했던 탓에 도시 야경을 보고 '진짜 몽골이에요?'라는 꼬리질문을 해야 했다. 몇 가지 단어만으로도 내가 가진 편견에 대한 증거가 수두룩했다.
내 생각은 내 생각이 맞을까?
아니면 미디어의 조종일까. 나는 지금 얼마나 많은 편견의 벽에 둘러싸여 있을까. 내가 하는 생각에 대한 확신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나가다가 처음 본 물건이 왠지 끌려 그냥 샀다는 말은 나도 모르게 노출된 미디어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았다. 강사님은 미디어를 접할 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말씀해 주셨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본 자료가 신뢰성이 있는지 정보 출처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자료보다는 신뢰성 있는 곳에서 나온 자료인지가 더 중요했다. 이는 내가 브런치에 어떤 정보를 언급할 때에도 그것의 정확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쓴 글의 신뢰성은 곧 내가 얼마나 정확히 알면서 쓰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사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부딪쳐야 한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제대로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문해력이다. 나는 어릴 적 장화홍련전을 읽고 계모에 대한 나쁜 인식을 가졌지만 오늘 수업 후 '계모'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살면서 이런 기회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틀 많은 사람이 틀 없이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배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것만이 내 생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수업을 듣고 내 속을 다 꺼내어 씻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지고 있는 수많은 틀을 털어버리고 가벼워지기 위해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해나가야겠다. 수업 후 교실 밖을 나서는 내 몸이 괜히 무거웠다. 오늘부터 다이어트 좀 하자.
* 대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Beat 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