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예뻤다

영원히 젊다는 건

by 마나

사과는 예뻤다. 빨갛고 매끄러운 표면에 흠집 하나 없었다. 소름이 끼쳤다. 너무 젊은 게 문제였다.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내가 이 사과를 언제 샀더라. 냉장고 한구석에 숨어 있던 사과를 꺼내 식탁 앞에 놓고 그 앞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가을초쯤으로 기억했다. 건강식으로 식단을 바꿔 보자고 마음먹은 뒤 사과가 몸에 좋다는 말을 듣고 산 것이었으니 9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젊디 젊은 사과를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저렇게 '예쁜' 사과를 얼마나 먹으며 살고 있을까.


내가 젊은 사과를 질투하는 걸까. 젊음은 싱그러운 거라던데 나는 징그럽다. 오늘 발견한 사과가 늙고 쭈글거렸더라면 미안하긴 해도 입맛이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과육이 남아 있는 부분을 깎아 먹었을 것이다. 지금은 먹거리에 대한 의심으로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다. 분명 겉으로 보면 아직 먹을 수 있는 사과다. 누군가가 멀쩡한 사과를 두고 먹을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고민하는 나를 본다면 낭비한다고 잔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못 먹겠다. 욕을 좀 듣더라도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출근 전 뭘 먹을지 고민하다 결국 물 한 잔만 들이켜고 말았다. 먹을 것이 없었다.


내 꿈은 자급자족이다. 현재 몇 가지 요리만 할 수 있을 뿐인 나를 보면 진짜 허무맹랑한 꿈같지만 그래도 계속 꿀 예정이다. 도달할 수 없는 곳일지라도 결국 인생의 길잡이 역할은 해주지 않을까 해서다. 오래오래 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주어진 삶은 끝까지 내 힘으로 살고 싶다. 그 원동력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라는 것을 잘 안다. 식사를 제대로 챙겨야 하는 이유가 그 외에 더 필요할까. 건강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만들어 먹기 시작한 지 석 달이 넘어간다. 다행히 고소하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내 입맛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협조적이다.


새로운 음식을 찾아 해 먹는 재미도 솔솔하다. 아침에는 주로 검은콩 두유에 아몬드 우유를 타서 먹는다. 모두가 내가 만든 것인데 만들기 어렵지도 않고 본래의 재료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아 안전하다. 며칠 전에는 아몬드 우유를 생각보다 많이 만들었다. 3일 정도는 먹을 수 있을 듯해서 나름 계획을 세워 먹었는데 3일째 되던 날 텀블러 뚜껑을 여니 쉰내가 났다. 순간 너무 아까웠다. 설마 하는 마음 때문에 정말로 쉰내가 맞는지 여러 번 체크를 한 후에야 버릴 수 있었다.


사과와 아몬드 우유. 무엇이 살아있는 음식일까. 분명 더 싱싱한 것은 사과인데 아몬드 우유가 더 군침이 돈다. 제때 먹지 않으면 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 상하지 않는 음식은 쉰 음식과도 같다. 아니, 쉰 음식은 안타깝기라도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음식은 소름이 끼치니 '싱싱한' 사과를 먹느니 차라리 굶는 게 낫다. 문제는 내가 마트에서 사는 식재료들이 싱싱한 건지 '싱싱한' 건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알면 피할 수 있지만 모르면 돈을 주며 몸을 망가뜨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나는 마트를 자주 간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산책 삼아 마트 한 바퀴를 돌며 사람도 먹거리도 구경한다. 그런데 가끔은 마트에 먹을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한다. 그 수많은 상품 속에 내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지 생각하면 큰 마트 속에서 혼자 구석으로 몰리는 느낌이다. 살아있는 식재료를 찾고 싶다. 사과 하나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현실이 무섭다. 그래서 자급자족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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