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과 이소라
23년 전 헤어졌던 연인을 만났다. 신동엽은 이소라를 보자마자 멋쩍게 헛웃음을 지었고 이소라도 괜히 머리를 만져댔다. 연예인이 된 지 30년이 넘은 두 사람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굳어버린 몸과 마음은 그들을 신인처럼 풋풋해 보이게 했다. 두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인 현실 아니었을까. 살면서 한 번쯤 꿈꿔 보지만 실제로 잘 일어날 거라 믿지 않는 순간이 영상 속에 담겨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둘은 마주 보고 앉았다. 이소라가 처음 시작하는 유튜브 방송이었다. 섭외를 위해 23년 만에 연락했을 때 신동엽은 무슨 콘셉트의 유튜브인지도 묻지 않고 승낙했다고 했다. 이소라가 필요할 때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출연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듯했다. 두 사람이 술을 한 잔씩 할 때마다 나도 따라 긴장을 풀어갔다. 그들의 어색한 대화는 꽤 자연스러웠다. ‘지나친 음주는 몸에 해롭다’라는 문구만이 지금 내가 방송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과거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두 사람의 모습에 세월이 보였다. 어릴 적부터 봐 온 연예인의 얼굴에 주름이 보일 때면 내 얼굴의 것과 비슷해 그제야 그 사람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안주 삼아 나누는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까마득하게 느껴질수록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더 보였다. 대화가 거의 끝날 때쯤 둘은 미리 짠 듯이 서로를 보며 지난 23년 동안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인연은 다했지만, 한때 가장 친한 친구였던 사람의 안녕을 확인한 후 안도하는 마음이었을 거라고 나는 해석했다.
우리는 모두 만나고 헤어진다. 영화처럼 애절하면서도 깔끔한 헤어짐이 현실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대부분의 헤어짐은 슬프고 아팠다. 그래서 헤어짐 대신 만남을 초점으로 했던 그들의 대화가 나는 좋았다. 왜 헤어졌느냐가 주제가 아니라 사귀면서 어땠는지, 함께 겪었던 일들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가 주제였다. 헤어졌지만 신동엽과 만남은 의미가 있었다고 이소라는 말했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생각났다. 한 시절 함께 한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어른 같았다.
둘의 대화에서 이왕이면 좋은 인연 더 이어갔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되레 그때 헤어지길 천만다행이라는 농담이 오고 갔다. 지나간 시간이라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 인연이 다했다는 사실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23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도 나의 인생에 잊히지 않을 인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말 그대로 내가 인생을 잘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신동엽과 이소라는 둘이 함께 있을 때도 그랬지만 따로 떨어져 사는 지금도 각자의 멋으로 살아가는 듯 보였다.
이소라의 첫 유튜브 방송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혹 누군가는 이런 재회도 방송으로 써먹는다고 쓴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신동엽이 나오겠다고 결정한 것 자체만으로 진심이 들어 있는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현실에서 내 실속을 따져가며 산다. 그렇다고 내가 삶을 거짓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연예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시절인연이 닿은 사람들끼리 좀 더 의미 있게 서로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대문 이미지 : 유튜브 '슈퍼마켙 소라' 영상 중 캡쳐
https://youtu.be/uU3_lJUGono?si=XAS8GSW1Qu52S1F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