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하다 갑갑해

갑진년(甲辰年)

by 마나

한자 甲(갑)은 새싹이 싹트면서 아직 씨앗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다. (네이버 사전 참고) 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갑(甲)을 큰 나무라 미리 인정해 준다.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이다. 큰 나무가 봄에 습기를 잔뜩 머금은 땅 위에 서 있는 형상이다. 성장하려는 욕구, 도전하려는 욕구가 우리에게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아직 봄을 생각하기에는 겨울이 한창이지만 2024년이 시작되니 나도 모르게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올해도 벌써 22일이 지났다. 지금 내 안의 가능성은 싹을 틔워 씨앗 껍질을 스스로 벗겨낼 준비를 하는 중일까.


모든 사람은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 각자의 사주를 가진다. 내 사주는 갑(甲)이 중심이다. 이미 사주에 나무를 가지고 있어서 올해는 나무 옆에 나무가 또 들어온 셈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를 '갑갑하다'라고 했다. '여유 없이 달라붙거나 압박하여 유쾌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네이버 사전 참고) 새싹일 때는 상관없지만 몸집이 커질수록 갑(甲)과 갑(甲)이 생각 없이 나란히 서 있으면 서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올해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뻗고 싶은 대로 가지를 뻗으면 결국 옆 나무의 가지를 잘라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향대로 살지 못해 갑갑하겠지만 이왕 답답할 시간이라면 의미라도 있길 바라야 하지 않을까. 1년 후 좀 더 선명한 나이테를 보상으로 바라며 올해 목표를 다시 되뇄다.


며칠 장염으로 고생했다. 아프면 서러울 법도 한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그렇지가 않았다. 방학이라 신경 쓸 것 없이 아프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좀 더 아픈 날이 지나갔다. 그리고 어제부터 누워 있는데 좀이 쑤셨다. 마음에 조바심도 들었다. 남들은 열심히 사는데 나 혼자 시간을 죽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시 움직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걸 보니 마음껏 아팠나 보다. 날짜를 보니 벌써 1월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는 뜻으로 일기를 적었다. 누워 있던 지난날을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한참 일기를 적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이 갑갑해졌다. 일기 내용이 너무 교과서 같았다. 잠시 쓰기를 멈추고 혼자서 씩씩거리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기장을 펼쳤다.


"젠장! 좀 쉬면 어때서!"


일기의 마지막 문구였다. 정중하게 반성하던 일기가 갑자기 욕으로 끝났다. 일기 내용은 뒤죽박죽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가 실제 내 마음이었고 1월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쉽지만 마음 편히 아팠던 시간은 좋았다. 몸에 힘 다 빼고 널브러진 나도 그 자체로 안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반성으로 마무리한다면 아팠던 내가 너무 불쌍할 것 같았다.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못생겼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오늘이야 비로소 일기를 일기답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일기를 쓸 때조차 자기 검열을 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은 혼자 쓰는 일기장에서도 자신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속마음을 이리도 꼭꼭 숨겨두는 것일까. 이유의 이유를 찾다 보면 언젠가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겠지만 지금은 숨기려 애를 쓰는 내가 안쓰러워 마음이 쓰인다. 다른 사람에게 속마음을 모두 펼쳐 보일 필요까진 없지만 나 혼자 있을 때만이라도 좀 더 자유로워질 순 없을까. 일부러 보여주려거나 숨기려는 개념보다는 그냥 마음을 있는 그대로 두면 될 텐데 그것도 쉽지 않아 혼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갑갑한 면이 있다. 에둘러 이야기하거나 능글거리며 문제를 해결하는 유연성 따윈 없다. 무조건 직설적으로 진실하게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아예 입을 다문다. 그 길밖에 모르다니, 참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 내가 올해는 좀 더 갑갑해지겠단다. 쉽지 않은 한 해겠지만 이왕 이리된 거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올해를 계기로 마음의 유연성을 키워보고 싶기 때문이다. 성장의 욕구, 배우려는 욕구가 샘솟는 걸 보니 올해가 갑진년은 맞나 보다. 내 성장 전략은 갑갑함을 갑갑함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나무와 나무가 나란히 서서 발생할 여러 문제를 두려워 말고 기다려 보려 한다. 그때야말로 내가 여태 하던 것 대신 새로운 삶의 방법을 써먹을 수 있는 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두고 보자. 해보지 않아 그렇지 의외로 나도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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