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을 깼다

그래서?

by 마나

유리컵을 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컵이 쟁반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나는 어떻게 할 생각도 없이 떨어지는 컵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바닥에 닿자마자 조각난 유리컵이 뿔뿔이 흩어졌다. 쨍한 기운의 폭발력 뒤에는 조용한 집이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머릿속은 시끌거렸다. '아, 오늘 왠지 재수 없겠는데?' 깨진 유리 조각 위로 불길한 생각이 들러붙으려고 분주히 움직였다. 괜히 기분까지 찝찝해졌다. 쓸데없는 것들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 신발을 신고 고무장갑을 꼈다.


유리 조각을 천천히 치웠다. 컵을 치우다 손가락이라도 다치게 되면 괜히 컵과 불운을 연결해 내가 나를 온종일 괴롭힐 게 뻔했다. 1에 1을 더해 2 이상의 효과를 내길 원치 않았다. 그리고 컵은 이미 깨진 후라 오늘 아침까지 사용한 거라고 슬퍼하며 애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용히 조각들을 모아 두꺼운 종이로 감쌌다. 쓸고 닦고를 여러 번 반복하니 숨어 있던 얇은 조각들까지 다 나왔다. 다시 신발을 벗고 고무장갑을 제자리에 두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은 조용해졌다.


컵 하나가 없어졌다. 그게 다였다. 겉으로는 깨진 유리컵이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온종일 나는 그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잊어버려서가 아니었다. 일부러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불길한 기운을 전달할 수도 있고 되새김질한다는 것 자체가 그냥 스쳐 지나갈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모두가 비논리적인 생각이었다. 연결할 필요도 없는 두 개를 서로 연결하여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만드는 작업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내 속에서 더 강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내 안에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을까. 이성적으로 보면 우스운 일인데 습관적으로 올라오는 생각들은 우습지만은 않다. 살면서 나도 모르게 가지게 된 비논리적인 습관들을 어떻게 하면 알아챌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나의 하루를 보며 안심할 것이 아니라 비웃을 수 있는 배짱은 어떻게 하면 생길 수 있을까. 내가 내 안에 갇혀 있다. 생각의 틀은 누가 만들어 준 게 아니잖는가. 스스로 만든 틀 안에 갇혀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꼴이었다.


며칠이 지나면 생각도 나지 않을 컵 하나 때문에 오늘 하루를 긴장하며 살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하루에 군더더기가 성가셨다. 좀 더 가볍게 살고 싶다. 미리 걱정하는 마음부터 내려놔 보면 어떨까. 불길한 생각보다는 내 능력을 믿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나는 유리컵을 사용할 수도 있고 깨지면 잘 치울 능력도 있다.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스스로 믿고 좀 더 당당하게 사용하고 당당하게 깨뜨리는 건 어떨까. 유리는 깨질 수 있는 소재다. 그래서 설명서에도 깨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일어났을 때 내가 처리만 가능하면 되지 않을까.


오늘 아침 깨진 유리컵은 내가 치웠다. 유리 조각들을 치우다 바닥이 이전보다 더 깨끗해지기도 했다. 거기까지면 충분했다. 문제는 그 이후 덧붙여진 과한 생각이었다. 언젠가 또 다른 유리컵을 깰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은 오늘과 달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글로 남긴다. 이왕 이리된 거 컵뿐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쓸데없이 연결된 여러 가지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 오늘 유리컵은 잘 깼다. 그리고 온종일 쓸데없는 걱정도 잘했다. 이렇게 부끄럽게 살아봐야 다음에는 혼자 이유 없이 긴장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모든 일은 의미가 있다. 오늘도 그러했다.


대문 이미지 : 네이버 이미지 검색

keyword
마나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