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싱어게인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

by 마나

싱어게인에 59호 가수가 나왔다. 나는 잘 모르는 가수지만 옆에서 부모님이 드시던 팥죽도 잠시 놓고 노래를 들으시는 것을 보니 프로그램 내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듯했다. 나도 부모님을 따라 조용히 노래를 들었다. 오늘 할 일을 다음 주로 모두 미룬 금요일 저녁이었다. 긴장이 풀린 채 음악을 들으며 실컷 잡생각을 했다. 노래가 끝난 후 TV 속 패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각자의 소감을 말했다. 노래를 편안하게 듣긴 했으나 그들과 같은 수준의 감동을 받지 못한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괜히 멀쩡한 귀를 긁적거리며 대단한 뭔가를 놓친 듯한 아쉬움을 달랬다.


“내가 나를 고집하면 할수록 찬사를 보내주는 이 프로그램에 감사를 전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들은 후 59호 가수가 한 말이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제대로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마지막 소감이 내겐 노래와 같았다. 오랜 세월 무명으로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원하는 음악 사이에서 고민했던 흔적이 느껴졌다. 그리고 용기 내어 선택한 자신의 무대가 가치 있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듯했다. 그의 모습은 나도 무안해하지 말고 감동을 받았으면 받은 대로, 그렇지 못했으면 못한 대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와도 같았다. 그제야 나도 미안함 대신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래, 나는 그의 노래에 감동받지 않았다. 오랜만에 음악에 기대어 마음 편히 잡생각을 했을 뿐이다. 몸만 주말이고 머리는 아직 주중이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금요일 저녁에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에 집중하는 것은 사치였다. 메리 크리스마스도 59호 노래 속에 들어 있는 감동처럼 남의 몫이었다. 그래서 나는 불량끼 가득 찬 시청자를 주중에서 주말로 데려다준 그의 마지막 말이 고마웠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정신을 차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한 가수의 무대를 넋 놓고 보고 계신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사춘기 시절을 보는 듯해 생소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나도 부모님의 눈길을 따라 59호를 향해 레이저를 쏘았다. 조금 늦었지만 너무 늦진 않아 다행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집에 오는 딸을 위해 엄마가 미리 데워 놓은 침대 속은 내 몸이 녹아 없어질 만큼 따뜻했다. 점점 몸의 독소가 모두 빠져나가며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다시 씻을까 했지만 그냥 있었다. 그리고 몽롱해지는 순간 59호 가수의 무대를 떠올렸다. 그가 불렀던 노래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를 고집한다는 그의 말이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들렸다. 그리고 문득 그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그의 이름은 뭘까. 부모님 댁에 오지 않는 이상 TV를 볼 일은 없으니 오늘의 호기심도 조금씩 옅어질 것이다. 그래도 혹시 알게 된다면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무명 가수는 가치 없는 가수라는 뜻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싱어게인이란 프로그램이 나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도 무명 교사다. 작은 학교 안에서 교육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애를 쓰는 교사다. 나의 노력이 큰 시대의 흐름 앞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작은 일에도 수없이 흔들리는 나는 끊이지 않는 잡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나를 고집하며 살고 싶다. 기분 좋게 웃을 날이 오길 바라지만 설사 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연히 만난 나와 비슷한 무명의 가수가 언젠가는 이름을 되찾고 훨훨 날아가길 꿈꾼다. 금요일 밤은 이런 꿈을 꾸기 딱 좋은 시간이다.


대문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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