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탈출 대신 퇴근합시다

by 마나

올해는 나이를 한 살 먹은 걸까, 먹다가 뱉어낸 걸까. 요즘은 나이 세는 법이 바뀌어 몇 살인지 말하기가 애매하다. 내년에도 같은 나이라니 4일 남은 올해가 왠지 꿈만 같다. 꿈이면 잘 깨고 싶고 현실이면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 한 해가 또 지나간다. 실제로 1월 1일의 해와 12월 28일의 해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달력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해가 그 해가 아니라고 느낀다. 매일 달력을 보며 날짜를 세는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책상 위에 24년도 달력을 23년도 달력 뒤에 모셔놓았다. 이제 슬슬 올해를 마무리할 시기라는 뜻이었다.


올해 초 지나간 자유학교의 삶을 되돌아보며 내가 매년 12월쯤 학교에서 한 번씩 화를 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12월이라는 공통된 시기를 봤을 때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원인 중 하나일 거라 추측했다. 그리고 남들 모르게 올해 12월이 오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화를 내지 말자는 목표를 세웠다. 12월이 되고 28일인 오늘까지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다행히 잘 넘겼다. 갑자기 내가 성숙해져서라기보다는 '나만의 12월 패턴'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약간의 자제력이 생겨서라 생각한다. 지금은 다소 어설프더라도 내년에는 올해보다는 덜 어설픈 12월의 나를 보기 위해 스스로 한 약속은 지키며 마무리하고 싶다.


어제도 학교에서 무사히 퇴근했다. 아니, 탈출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다. 며칠 뒤면 생각도 나지 않을 작은 일들 때문에 수료식 후엔 아쉬워할 것이 틀림없을 하루를 힘겨워했다. 꼼짝없이 나중에 후회할 일 하나가 더 추가된 셈이다. 그래도 탈출은 할 망정 화를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행히 수료식까지는 아직 며칠이 더 남았다. 오늘부터는 견디려 하지 말고 아예 몸에 힘을 빼는 방법을 써봐야겠다. 학교를 뒤져보면 여기저기에 웃음거리가 숨겨져 있을 테니 웃음 포인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싶다. 여태 탈출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그만하자.


오늘 아침도 7시가 넘어 해가 떴다. 제법 큰 해가 내 눈앞에 떠서 하늘색을 바꾸고 있었다. 저 넓은 하늘에 작은 동그라미 하나가 있을 뿐인데 그것이 하늘 전체를 바꾸다니, 매일 보는 하늘이지만 매일이 신기하다. 실제로는 작은 하늘에 큰 동그라미일 텐데 내가 보는 세상은 모두가 착각 속이라 주객이 전도되어 보인다. 그래도 착각인 걸 알고만 있다면 착각 속에 살든 그 밖으로 나오든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출근 준비를 끝내고 이제 아침을 시작하는 해와 파란 하늘을 다시 쳐다보았다. 하늘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오늘의 하늘을 나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올해 제대로 나이를 먹으며 눈이 깊어졌을까.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내가 궁금한 나는 하늘과 해처럼 나와 잘 지내고 싶은가 보다.


아직 겨울은 한창이고 수료식까지는 9일이 더 남았다. 피곤하고 예민한 나를 느끼며 몸이 참 영리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학년 말인지 알고 딱딱 표시를 내는 건지 모르겠다. 달라진 나이 셈법이 한 살을 줄여준 듯한 착각을 주긴 하지만 실제로 내 몸은 1년 진득하게 나이 먹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피곤한 몸을 가누지 못해 어제도 학교에서 탈출했지만 오늘은 정신만이라도 편안하게 만든 후 웃으며 퇴근하자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24년이 시작되면 이제는 더 이상 뱉어낼 기회 없이 다시 나이를 먹기 시작할 것이다. 덤으로 얻은 1년이니 몸에 힘 좀 빼고 가볍게 지내고 싶다. 탈출 대신 퇴근을 목표로 오늘도 출근한다.


대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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