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식
월요일 아침이다. 교무실에는 내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낡은 키보드의 낑낑대는 소리만 들린다.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시끌벅적했던 수료식과 대비되어 학교가 더 적막하다. 연말쯤부터 피곤이 누적되어 퇴근할 때마다 학기가 며칠 더 남았는지 세곤 했었는데 막상 방학이 된 후인 오늘도 나는 학교에 나와 있다. 내 모습이 좀 없어 보이긴 해도 학교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공간이라 편해서 올 만은 한 것 같다. 이렇게 조용한 날에는 학교 특유의 시멘트 냄새가 더 난다. 사람 냄새 진하게 나던 곳이라 빠져나간 빈자리가 커서 그럴 것이다. 역시 학교는 학생의 생기로 채워져야 하나 보다.
지난 토요일에 일 년 농사를 마무리했다.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4시간이 넘는 수료식을 보았다. 내 눈에 콩깍지가 껴서 그런 게 아니라 7명의 학생이 만든 수료식은 정말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필요한 소품을 배치하는 역할을 맡은 나는 앞줄에 앉아 공연을 보았다. 무대에 올라간 학생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지만 도와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혼자 잘할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말 그대로 학생을 무대에 그냥 던져두는 심정으로 앞을 보았다. 대신 눈이 마주치면 편안하게 웃어 주고 재미있으면 소리 내어 웃었다. 1년을 함께 보낸 덕분에 무대 속 학생들의 작은 몸짓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 속에 학생들의 마음이 다 들어 있었다.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며 나도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았다. 보름이는 교사 4명 각각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선물해 주었는데 그 속에는 마지막으로 교사들의 눈물을 보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는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애써 교사들을 챙기는 마음이 고마워 발표를 더 열심히 들었다. 보름이 눈에는 내가 '녹슨 부분을 닦아주는 사람' 같아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스스로를 챙기지 않으니 닦은 부분을 내가 다 흡수하는 것 같다고 자신을 잘 챙기며 살라고 했다. 흐뭇하게만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름이의 잔소리가 진하면서도 쓴 커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스스로 챙겨야지 누가 대신 챙겨주냐. 무대를 내려오는 보름이를 보며 올해는 이런 소리 듣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가끔 마음이 허할 때는 보름이의 잔소리가 다시 듣고 싶을 듯하다.
산호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며 '산호 나르시시즘' 프로젝트를 남몰래 진행했다고 했다. 자기혐오에 빠질 때마다 "내가 뭐 어때서?", "나는 개쩐다!" 등을 외쳤고 실수를 했을 때에도 "실수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내가 좋아"와 같이 순간순간 자신의 장점을 찾아 혼잣말을 했다고 했다. 잠시만 긴장을 풀면 다시 자기혐오에 빠지기 때문에 늘 이런 이야기들을 하며 살았던 듯했다. 올해 내가 노력하며 살았던 부분과 닮아 와닿는 발표였다. "나도 개쩐다!" 산호 따라 혼잣말을 하며 피식 웃었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지난 1년이 즐겁지 않았나 싶다.
수료식에는 개인별 발표뿐 아니라 댄스, 기타, 피아노, 연극 공연도 있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에피소드를 담은 연극을 했는데 거기에는 나도 동참했다. 연습할 때는 학생들과 노는 것이 마냥 재미있기만 했었는데 막상 수료식 당일이 되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내게 파파야는 대사 전달만 정확하게 하면 웃는 것은 관객 몫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만 붙잡자고 마음먹었다. 떨리는 두 손을 겨우 붙잡고 무대에 올랐다. 첫 에피소드에서 나는 두나의 역할이었다. 떨리는 손을 제압하기 위해 냅다 목소리를 높여 두나의 말투로 대사를 쳤다. 나의 발연기에 객석에서 약간의 웃음소리가 났다.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큰 응원소리였다. 그제야 내가 무대 위에서는 학생, 동료 교사와, 무대 밖에는 관객과 함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대가 편안해졌다.
'예뻤다'라는 노래로 밴드 공연을 하며 수료식을 끝냈다. 학생들은 정말로 예뻤다. 마지막 서클에서 우리는 우는 것 대신 웃는 것을 선택했다. 최선을 다해 보낸 1년이었다. 그러니 마지막은 완벽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잘할 수 없었음을 뻐기며 좀 더 가볍게 학교를 나갈 자격이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피곤하지 않은 상태로 가볍게 퇴근했다. 오늘 조용한 학교에 앉아 있으니 수료식 날이 아니라 수료식을 준비하던 시간이 떠오른다. 평가도 발표도 다 끝난 그때 우리는 아무 말 대잔치로 서로 얼굴만 보면 시비를 걸고 시시덕거렸었다. 나는 그날을 더 기억하고 싶은가 보다. 교사도 학생도 아닌 그저 우리로 편안하게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으로 올해를 마무리한다. 아직도 화성을 연기하던 두나의 '허허'거리던 웃음소리가 들린다. 연극 연습할 때 가장 많이 웃었던 부분이었는데 다음에 학교에 오면 다시 해달라고 졸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