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채식을 먹으려고 본격적으로 노력한 지 6개월쯤 되어 가긴 하지만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건 남들과 함께 있을 때는 주어진 음식을 그냥 먹기 때문이다. 나는 채식과 관련된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저 채식이 내 입맛에 좀 더 맞을 뿐이다. 이는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남들에게 말해야 하는 여러 가지 설명들이 내 안에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내가 먹고 싶은 건강한 먹거리를 선택하며 살고 싶다.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는 고기 없이 내 몸이 버틸 수 있을지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그것도 식단을 조절하며 신경을 쓰니 크게 무리 없이 해결되었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내 몸에는 채식이 더 맞지만, 삼계탕에 들어 있는 닭다리를 보면 여전히 침이 고이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나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침샘이 내가 나를 채식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며칠 전 경남대안교육연합 전문적학습공동체에서 진행한 연수에 참석했다. 1박 2일 동안 50명이 넘는 교사들이 함께 머물러야 해서 식사부터 방 배정까지 사전 조사를 미리 한 상태였다. 식사 선택을 할 때 채식이 있었다. 요즘 연수는 이런 것도 세심하게 챙기는구나 싶어 반가웠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첫 식사 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해 채식을 선택한 사람은 5명이었다. 우리는 별도의 식당으로 가서 된장찌개에 다양한 밑반찬이 있는 식사를 했다. 50명 중 5명밖에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채식을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식사가 어색하지 않았다. 연수를 운영하는 교사 중 한 사람이 채식 메뉴에 대한 의견을 낸 듯했다. 내 앞에 앉은 교사가 다른 연수에 참석했을 때 연수 내내 밥과 김치만 먹어야 했던 경험을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채식을 선택하게 해 주신 운영진의 배려가 더 고마웠다. 남들과 함께 있을 때도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채식을 선택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다음 식사에는 7명이 채식을 선택했다. 라자냐가 나왔는데 잘 모르는 음식이라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매니저에게 음식 설명을 듣고 나서도 영화에서나 본 듯한 라자냐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래도 식당에서 좀 더 신경을 쓴 메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연수에 와서 이런 음식을 먹을 줄은 몰랐다며 7명은 갑자기 동지가 되어 낯선 음식과 채식에 관한 이야기로 서로에 대한 낯섦을 없앴다. 나처럼 채식이 더 입맛에 맞아서라는 사람도 있었고 몸이 아픈 뒤로 선택했다는 사람, 동물권에 관한 생각 때문에 식습관을 바꿨다는 사람 등 채식을 하는 이유가 다 달랐다. 그래도 대부분은 나처럼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채식 메뉴만을 고집할 수 없어서 주어진 대로 먹는다고 했다. 나만 어정쩡한 게 아니구나 싶어 반갑기도 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먹고 싶을 때는 자연스럽게 채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싶었다.
낯선 라자냐는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상황을 보여주었다. 채식을 먹는 사람들이라 해서 다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밀가루를 드시지 못해 라자냐의 속 재료만을 파서 드셨고 다른 분은 달걀을 드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남기는 것보다는 낫다며 사이드로 나온 빵을 억지로 드셨다. 나름으로 채식에 신경을 쓴 식사 시간이었는데도 이렇게 다양한 변수들이 발생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개인별로 메뉴 선택을 할 수 없을 때는 뷔페가 제일 좋겠다 싶었다. 할 수 있는 한 충분한 배려를 하더라도 식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개개인의 식습관을 다 예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이 복잡하여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채식 선택이 어려운 것은 아닐까 싶다.
연수를 듣고 나오며 대안교육이 뭘까를 다시 생각했다. 다수의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운영진이 다수만을 생각하지는 않는 것,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먹을 권리가 있으므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이 대안교육이 지향해야 할 지점은 아닐까. 연수가 끝난 후 연수 내용보다 채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책 속에서 배운 존중과 배려를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배려받으며 존중받으며 연수를 들었다. 내 삶의 선택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이 쌓여 언젠가는 나도 남들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하게 채식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연수도 잘 들었고 밥도 잘 먹었다. 다음 연수에도 채식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