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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an 27. 2024

프롤로그 : 또라이와 새끼

1일 1버킷리스트

“그냥 집구석에서 애나 키우고 살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은 내게 화가 났었다. 분을 못 이겨서, 그리고 내게 상처를 주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주눅이 들어 그냥 가만히 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순간이 빨리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라 생각하고 꾹 참았다. 사회초년생이었다. 무엇을 잘했고 잘못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더 무서웠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집구석에만 있지 않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지금은 내 애 대신 학교에서 학생을 키우며 산다. 반항하듯 산 인생은 아니었는데 살다 보니 그 말과 정확히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내가 가끔 오래된 그 말을 생각한다. 그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집순이에 어린아이만 보면 눈이 돌아간다는 것을. 집과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 그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많이 나를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욕 같은 말이었지만 내게 상처가 되진 않았다. 내가 남들보다 좀 더 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직면하게 해 준 말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겉으로는 사회초년생 티를 벗어났지만 속은 여전했다. 온갖 말에 상처받으며 단단하지 않은 채로 살았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연약하지만 질긴 것이 틀림없다. 그때도 무섭고 슬펐지만 울면서 다시 움직였던 나였다. 주눅 든 내 모습 뒤에 나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 들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것은 어려웠다. 강인함이 질김보다 더 멋졌으므로 질긴 모습은 보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나는 여린 면이 싫었다. 이 성가신 것을 없애기 위해 오랜 기간 무던히도 애를 썼다. 나를 몰아세우는 게 당장은 힘들지만, 곧 강한 나를 만들 수 있는 길이라 여겼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연약한 나는 상처받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지만 단단해지진 않았다. 대신 울면서도 다시 일어났다. 그 지루한 실패 같은 반복이 계속되면서 내가 진짜로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 질문의 답은 의외로 쉬웠다. 연약함이었다. 그렇게도 버리고 싶었던 여린 면은 진짜 나였고 나에게 있어 강함은 질긴 것이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음으로 나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나를 만났다. 돌아온 길이 멀게만 느껴지지만, 지금이라도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제 더는 나를 외면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올해는 1일 1버킷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매일 하나씩 내가 내게 하고 싶은 것을 묻는 것이다. 해야 할 일,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것 따위 말고, 정말로 쓸데없고 어이없는 것들을 하며 살고 싶다. 오늘은 친구와 ‘또라이’와 ‘새끼’ 중 무엇이 더 욕 같은지에 대해 토론을 했다. 나는 새끼라고 했고 친구는 또라이라 했다. 이야기하다 보니 익숙함의 정도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욕이 될 수도, 친근감의 표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조금 있으니 교사가 이런 말을 해도 되냐고 속에서 검열하는 생각들이 올라왔다. 상관없었다. 나는 재미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답게 산다는 건 뭘까. 나는 집에서 조카와 함께 놀 때도 신나게 놀지만,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낼 때도 잘 지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찾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곳에서 지내든 내가 선택한 장소에서 헛소리 마음껏 하며 지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또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혼자 울거나 동굴로 들어가기도 하겠지. 그땐 그냥 그대로 놔둘 생각이다. 나는 누구보다 질기고 움직이길 좋아하니 실컷 움츠러든 후에는 다시 튀어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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