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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Feb 10. 2024

처음은 반갑지만 두 번째는 어색한

내 머리가 이리도 무거웠었나. 그날도 나는 퇴근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머리 무게는 어떻게 빼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먼지 하나라도 덜어내고 싶은 내 작은 소망이 든 동작이었다. 할 일이 많아 종일 바삐 움직이고도 내일 더 많은 일거리를 남겨둔 채 하는 퇴근은 묵직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나는 축 처진 내 몸을 돈으로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 터라 저녁에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인생 뭐 별거 있나!"를 외치며 집 근처 식당 중 제일 가고 싶은 곳으로 들어가자고 혼자서 허풍을 떨었다.


중국집과 죽집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뭘 더 먹고 싶은 건지 속으로 계속 묻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눈길이 닿은 죽집으로 그냥 들어갔다. 마침 식당 안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우유부단한 나는 메뉴판을 보고 또 한참 시간을 끌었다. 뭐 하나 시원시원하게 결정하지 못해서 내 머리가 무거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뭐라도 당장 선택을 하고 싶어졌다. 나만 쳐다보고 계신 주인아주머니의 눈길도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때, 갈 곳 없어 헤매던 내 눈에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강된장해물덮밥이라는 메뉴가 들어왔다. 나는 앞뒤 따지지 않고 냅다 시켰다. 아주머니는 그제야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가셨고 나도 뭔가를 시켰다는 만족감에 한숨을 쉬었다. 


바빴던 하루였는데 음식을 시키고 나니 갑자기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피로감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자동으로 멍 때리기를 시작했다. 10분이 지나자 좀비처럼 앉아 있는 내 앞에 아주머니가 강된장해물덮밥을 놓아주셨다. 자신이 잘하는 음식이니 맛있을 거라 말씀하시는 모습이 아이처럼 귀여웠다. 나는 웃으며 잘 먹겠다고 인사를 했다. 식사하는 내게 아주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를 보니 시집간 딸이 생각나셨나 보다. 나는 밥을 먹으며 집에서 엄마 이야기를 듣듯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같은 눈빛이겠구나 싶었다. 식당 안의 편안함과 따뜻한 음식은 그날의 내 무게를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식사를 끝낸 후 나도 모르게 가벼워진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다. 며칠 전 장염으로 고생한 후라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집을 나왔는데 마침 그 죽집이 보였다. 나는 들어갈까 하다가 말았다. 아무 말 없이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싶은데 거기는 너무 따뜻한 곳이라서 싫었다. 아주머니에게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그날 분명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나왔었는데 왜 다시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 순간은 나도 나를 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죽집 대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가계로 들어갔다. 혼자서 밥을 먹으며 외로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다 이해할 수 없는 게 나인 듯했다. 


이런 날이 종종 있다. 예전 같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나의 문제점을 찾아 분석하고 고치려 계획을 잡으며 하루를 다 보냈을 텐데 그날은 그냥 웃고 말았다. 다 이해하면 어쩔 거고 이해 못하면 어쩔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바뀐 이유를 아직은 잘 모른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며 내 안에 있는 열정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닦달한다고 내가 네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메뉴조차 잘 정하지 못하는 내게 그 아주머니가 내어주신 따뜻한 강된장해물덮밥은 분명 나 대신 나를 보듬어주는 손길이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 본 자만이 맛을 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내 안의 쓸쓸함은 따뜻함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외로움 대신 따뜻함을 품에 담고 싶다. 분명 내 안에도 따뜻함을 계속 맛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천천히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봐야겠다. 언젠가 다시 한번 그 죽집에 들어가 아주머니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당당하게 말하며 식사할 날을 꿈꾼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일단 큰 욕심 버리고 오늘만 사랑할 식당을 또 찾아보자. 두 번의 만남은 어색하더라도 처음은 괜찮은 게 어딘가. 나는 평생 내가 숙제다. 쉽진 않지만 꾸준히 숙제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다행이다. 


대문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딸기 샤벳의 소박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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