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며칠 동안 묵혀 있던 차가운 냉기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싸준 음식과 다른 짐들을 내려놓고 일단 보일러부터 켰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 창문을 열 수도 없어 대신 환풍기를 틀었다. 추운 곳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게 더 낫다. 부모님 댁으로 가기 전 했던 빨래를 걷어 개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뿜어내는 사람 냄새에 보일러의 열기가 더해지며 집안이 조금씩 데워졌다. 역시 주인이 있어야 집이 환해지지. 산책하며 영역 표시를 하는 개처럼 집 안 구석구석을 닦았다. 손길이 닿은 후 깨끗해진 부분이 넓어질수록 뿌옇게 보였던 내 영역이 선명해졌다.
청소를 하다 그대로 바닥에 대(大) 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작은 보금자리가 아늑했다. 며칠 동안 부모님 댁에서 가족과 지내며 일어났던 이런저런 일들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함께했던 이야기가 소설책 읽듯 눈앞에 펼쳐졌다. 혼자서 시시덕거렸다. 나는 돌아올 곳이 있어 매일 밖으로 나가고, 갈 곳이 있어 안으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현재 내가 꽤 행복하다는 사실을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길 떠나 도착한 부모님 댁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왔다. 청소는 오가며 벌어졌던 많은 일을 정리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누워있는 게 지겨워질 때쯤 다시 일어나 청소를 시작했다. 오늘 끝내도 되고 하다가 그만둬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독립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가족과 떨어져 산다기보다는 잠시 집 밖에 머물다 다시 들어가는 개념으로 생각했다. 머릿속에서는 부모님 댁이 여전히 내 집이었으므로 자취집에 들어와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청소도 거의 하지 않았고 음식을 해 먹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던 집이어서 어린 마음에 보일러를 마음껏 틀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임시로 거주하는 곳에서 있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 댁을 나올 때마다 눈물이 났었다. 집 안과 밖의 온도 차가 커서 더 그랬을 것이다. 누가 독립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괜히 서러워 혼자 불쌍한 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깨끗하지도 않고 먹을 것도 없는 집이 춥기까지 했으니 정이 가지 않아 더 그랬을 것 같다.
독립생활 13년 차가 넘어서며 서서히 안팎의 개념이 바뀌었다. 부모님 댁은 가는 곳으로, 내가 사는 곳은 돌아오는 곳이 되었다. 임시로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내 집이었다. 생각이 바뀌면서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집을 청소할 때마다 몸에서 땀이 나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내 손길이 하루씩 쌓여 집 안에서 혼자 즐길 수 있는 일들도 생겼다. 내가 있는 곳이 곧 나였다. 집은 점점 초라하지 않고 단아해져 갔다. 비록 매일 꾸준히 먼지가 쌓이지만 이는 내가 나를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살라는 뜻일 것이다. 귀찮긴 하지만 걸레로 영역 표시를 하고 난 후면 늘 기분이 상쾌하다. 바닥에 누워 양팔과 양다리를 휘저어본다. 이렇게 비벼대도 등판이 깨끗할 거란 믿음이 있다. 스스로 노력해서 내 속에 심은 씨앗이다. 나를 믿는 마음이 쑥쑥 크기를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바닥을 닦았다.
얼마 전 갑자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급하게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한 적이 있다. 마침 담당자가 계셔서 바로 올라오겠다고 하셨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전화를 끊고 나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이 들어왔을 때 흠이 될 만한 부분이 없는지를 살폈다. 더러워서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다. 그래, 내 집은 언제든 이 정도 깨끗하긴 하지. 순간 속에서 만족감이 올라오며 콧대가 하늘로 슬쩍 올라갔다. 남들은 신경도 안 쓸 부분이지만 상관없었다. 벨이 울리고 나는 당당하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일하시는 분이 전기를 고쳐주고 나가실 때까지 단아한 집과 닮은 주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다행히 큰일은 아니라서 전기는 금방 들어왔다. 두 분은 다음에도 같은 일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조치를 말씀해 주신 후 다시 돌아갔다. 나도 뒤돌아서며 혼자 씩 웃었다.
이제 더는 부모님 댁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서러워서 울지는 않는다. 돌아와 들어갈 내 집도 좋기 때문이다. 비교는 남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자신만을 대상으로 할 때 가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분명 예전의 나보다는 깨끗하게 산다. 왜 치우지 않고 살았을까. 내 삶을 스스로 아끼지 않았던 건 아닐까. 이런 나를 보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청소가 자존감과 관련 있는 것은 맞겠다 싶었다. 나는 오늘도 틈틈이 주변을 살핀다. 세수로 얼굴을 깨끗이 하고 방을 닦으며 마음을 정리한다. 그리고 내 자존감이 안녕하길 바란다. 오늘처럼 내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대문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