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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Feb 24. 2024

출근 대신 땡땡이

집 근처에 빵집이 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출근길에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나는 일부러 차 창문을 연다. 샤넬 향수는 맡으려면 돈을 내야 하지만 빵집 냄새는 공짜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방금 먹은 아침이 무색하게 배가 고파진다. 존재감 확실한 빵집을 출퇴근길마다 훔쳐보는 것이 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다. 주말이 되면 가끔 빵을 사기도 한다. 빵집에 들어갈 때마다 오늘은 다른 걸 사 먹어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사서 나오는 건 늘 치아바타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빵이다. 나도 치아바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욕심을 부리며 통으로 된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이게 행복이지 싶다.


평일 아침 차 속에서 맡은 빵 냄새는 종종 내 상상력을 자극한다. 출근할 때마다 빵집을 보며 학교로 출근하지 않고 그곳에 앉아 글을 쓰는 나를 꿈꿨다. 상상 속에서 나는 치아바타를 사지 않았다. 대신 내 앞에는 화려하고 달달한 딸기케이크에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있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는 꿈을 더 꿈처럼 느껴지게 했다. 딸기 하나를 씹으며 글을 썼다. 평소에는 단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커피는 잠을 못 자 마시지도 못하면서 혼자 꿈꾸는 내 모습은 꽤 달짝지근했다. 허세가 빵빵하게 들어간 상상력이 틀림없었다.


오늘은 방학이라 드디어 평일 출근 시간에 빵집에 갈 수 있게 됐다. 매번 가서 글 쓰는 카페는 텀블러를 주면 500월 할인을 해주지만 오늘은 나를 유혹하는 빵집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과감하게 500원을 포기했다. 아침이라 매장 내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빵집 주위에는 출근하는 차량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인데 오늘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다. 콧노래를 부르며 느긋하게 빵을 구경했다. 치아바타를 지나 딸기케이크를 힐끔 본 후 샌드위치를 샀다. 그리고 재즈가 나오는 빵집 귀퉁이 좌석에 자리 잡았다. 오늘은 출근을 위해 바쁘게 식사할 필요가 없었다. 고소한 빵이 코가 아니라 입으로 서서히 들어왔다.


꿈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실감한다. 오늘처럼 꿈꾸던 시간을 현실에서 가지게 될 때도 나는 꿈과 다른 선택을 한다. 내 입맛과 제일 잘 맞는 치아바타와 상상 속에서만 늘 먹던 딸기케이크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샌드위치는 각자 내 삶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 내가 선택한 샌드위치를 보며 이것이 지금 내가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빵일까를 생각했다. 화려해 보이는 빵에 대한 호기심은 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는 오늘도 나는 딸기케이크 대신 먹어본 빵을 선택했다. 그나마 매번 샀던 치아바타는 아니었으니 나름대로 변화를 준 건 맞다. 꿈인 듯 꿈 아닌 아침에, 나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어정쩡한 시간을 즐긴다. 현실에 발을 딛고 꿈을 꾸고 있으니 어중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호기심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진열장에 있는 딸기케이크가 신경 쓰인 것도 아니다. 나는 완벽하게 달달하지 않는 선택이 만족스러웠다. 샌드위치도 맛있고, 덤으로 밀가루로 된 빵만 먹은 게 아니라서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는 내 나이에는 건강을 생각하는 식사를 시작할 때라 생각한다. 순수 100% 호기심을 따라가지 않는 건 지금의 나에게 제일 자연스러운 행동 아닐까. 나이가 어렸다면 딸기케이크를 먹지 못했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느끼며 먹고 있는 샌드위치가 맛이 없다고 툴툴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눈앞에 있는 어정쩡한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도파민을 분비하진 못해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아무 날도 아닌 날에 큰 딸기케이크를 사서 커피와 함께 브런치를 즐기고 싶다. 건강, 가격, 시간 모두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그 순간만을 즐길 용기가 아직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가지고 사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 있는 샌드위치를 본다. 화려하진 않지만 속이 든든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세상을 살짝 즐기고 살짝 두려워하며 사는 게 나다.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꿈꿀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 만족한다. 오늘 샌드위치는 꽤 맛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제법 충족되는 중이다. 꽉 채워서 내일은 땡땡이 대신 출근해야겠다.


대문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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