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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r 02. 2024

올해 버킷리스트는 잘 지키고 있나요

필사

<엄마 필사>

며칠 전 부모님 댁에서 엄마의 필사 공책을 보았다. 엄마는 내 취미인 왼손 필사를 함께하고 계셨다.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딸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싶어 시작하신 일이었다. 나는 엄마의 글자를 통해 <어린 왕자>를 읽었다. 인쇄된 책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꾹꾹 눌러쓴 글씨 속에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이 더해져 그럴 것이다. 필사는 제법 진행되어 지금은 어린 왕자가 여우와 '길들이기'에 관해 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엄마의 짧은 일기도 있었다. 공책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불 속에서 움츠려 있던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멍한 내 눈이 엄마의 글씨를 따라 흔들렸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나도 필사를 하며 혼자 신나게 놀았었지. 엄마의 공책 위에 손가락을 대고 글씨를 느껴보았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는 핑계로 필사를 하루만 쉬려 했는데 하루가 이틀이 되며 아예 멈춰버렸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보름이 넘어갔다. 지난 2년간 거의 매일 하던 일이었는데 일상에서 없애는 데 드는 시간은 한순간이었다. 이불 속은 점점 익숙해졌고 가속도가 붙었다. 17일이 하루 같았다. 오늘 아침 다시 공책 앞에 섰지만, 한껏 게을러진 내 몸은 움직이지 않으려 저항을 했다. 겨우 손을 뻗어 공책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움직이고 있긴 했으나 나는 금세 게을러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다시 필사를 할지 말지 망설이는 순간, 바로 생각의 고리를 끊었다. 또 다른 17일을 만들 수는 없었다.  


연초에 만들었던 버킷리스트를 서랍에서 꺼내 책상 앞 벽에 붙였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올해의 초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필사 외에도 잊고 있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현재의 내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버킷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민망함이 올라왔다. 흔들린다는 건 주저앉으려는 힘 못지않게 다잡으려는 힘이 있다는 뜻 아닐까. 내 게으름에 애써 이유를 붙여 보며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매일 불안하다면 매일 마음을 다잡아 보지 싶었다. 이불에서 나오기 전에 지난 17일 동안 푹 쉬었는지를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버킷리스트를 별로 의식하지도 않고 쉰 것이 틀림없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그럼 됐다' 싶었다. 푹 쉬었으면 이제 일어나야지. 냅다 연필을 들고 공책에 날짜를 적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필사를 시작했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적으며 나를 살폈다. 그리고 주변도 둘러보았다. 나는 이렇게나 연약한 존재였다. 잘 지내다가도 하루를 삐끗하면 언제든 그대로 주저앉을 수 있었다. 일상을 유지하며 산다는 건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일인가 보다. 17일을 동굴 속에서 보내며 나는 약한 것이 아니라 약하지 않은 척하는 게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제대로 걷는 날보다 삐끗거리는 날이 더 많은 나는 안팎으로 붙잡을 수 있는 기둥이 필요했다. 잘 지내다가도 한순간에 기가 빠져 동굴에 들어갔던 이유도 잘 지낸 것이 아니라 잘 지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상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힘들었던 나를 살피니 그런 나를 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아닌 척해서 모른 척해주었던 사람들의 배려가 이제야 느껴졌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나는 늘 누구와 함께였다. 공책이 채워지면서 나도 점점 차분해졌다. 


필사를 끝내고 나니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을 쐰 듯했다. 역시, 필사는 이런 맛이었지. 기분 좋게 연필을 놓고 손때가 묻은 공책을 바라보았다. 내 글씨에 엄마의 글씨가 겹쳐 보였다. 함께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일상을 잘 꾸려나간다는 건 소소한 행복을 매 순간 느끼며 산다는 뜻 같다. 크게 힘들진 않지만 매일 같은 일을 하는 게 쉬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상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사나 보다. 사람들 때문에 필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게을러질 때쯤 일부러 사람들을 의식할 수 있도록 말이다. 버킷리스트를 벽에 붙이는 것도 같은 효과가 있었다. 나를 드러내며 스스로 다잡았다. 약하면 약한 대로 살아갈 구멍이 있다고 내 안에 있는 누군가가 알려주는 듯했다.    

필사는 내 버킷리스트의 뼈대다. 아침에 일어나 책을 손으로 읽고 나면 하루를 잘 시작한 듯한 기분이 든다. 17일간 마지노선이 무너진 채로 지냈다. 예전에는 시간이 쌓이는 듯했는데 최근에는 새는 것 같았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났다면 나는 아마 돌아오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올 초에 만들었던 버킷리스트도 점점 먼지가 쌓여 무겁게 가라앉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먼지 대신 글씨를 쌓았다. 덕분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좋다. 연말에도 지금과 같은 몸무게로 버킷리스트를 보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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