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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Feb 13. 2024

저기, 맞춤법 틀렸어요

오전에 모르는 분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읽자마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 글에 맞춤법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빠르게 글 조회수를 확인했다. 축복인지 악몽인지 울고 싶을 정도로 평소보다 많았다. 내가 쓴 글이 아닐 거라고 부인하고 싶은 얼토당토않은 우김까지 속에서 올라왔다. 여러모로 머리를 굴려보아도 분명 내 글이었다. 일단 바로 글을 수정했다. (02화 김밥집 진상 손님 (brunch.co.kr))

<받은 메일>

오래전 먹었던 계란김밥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김밥이 김이 아닌 계란에 싸여'라고 표현해야 하는데 '계란에 쌓여'라는 말로 혼자서 문맥에 맞지 않은 높은 계란 탑을 쌓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초고 작성 후 수정하며 몇 번이고 봤던 글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쌓인 계란'이 존재감이 없었던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식은땀과 함께 목 뒷덜미가 조여들었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난리 난 속을 다독였다. 다급한 마음에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내 글을 읽은 사람 중에 오류를 발견한 사람이 많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렸다. 종교가 없어 잘은 모르지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그 어떤 영적인 존재가 있지 않을까. 떨리는 내 목소리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시간이 지나자 붕 떴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왕 벌어진 일이었고 바뀔 수 없는 과거였다. 현재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다행히 미래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맞다. 미래까지 가지 않을 수 있어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제야 부끄러움으로 눈이 멀었던 내가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30분 전에 켜 놓은 컴퓨터 스크린에 받은 메일이 여전히 펼쳐져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다. 내 글을 읽어주신 것도 고마운데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기 위해 손수 메일까지 보내주셨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평소에 친한 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오탈자를 보면 바로 말을 해주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겠지만 메일을 보낼 용기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종종 댓글에 내 글의 오점을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댓글을 볼 때마다 일단 넙죽 절부터 한다. 내용이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려는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신 메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점점 부끄러움보다 고마움이 커졌다. 앞으로 좋은 글 기대한다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그냥 인사말로 흘려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글까지는 모르겠지만 애정을 가지고 봐주시는 분에게 실망보다는 읽는 기쁨을 더 드릴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타나 띄어쓰기 오류가 있을까 봐 조심스러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이었다. 비록 편하게 메일을 쓰진 못했지만 해이해진 내게 필요한 자극이었다. 내가 쓴 글이라도 품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건 잘 만들어진 글에 한해서가 아닐까. 어설픈 채로 쫓기듯 보낸 글은 좀 더 품고 보내라는 뜻으로 다시 나에게 오거나 혹은 아무도 읽지 않고 방치된다. 나는 그분에게 내 글을 다시 품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메일을 보내고 적은 글을 다시 살폈다. 늦었지만 그제야 김밥 든 글이 맛있게 느껴졌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기본이지만 나는 여전히 기본 앞에서 불안하다. 내 글에서 뒤늦게 오탈자를 발견할 때마다 어릴 때 책 좀 더 읽을 걸 하는 후회도 한다. 하지만 형식에 대한 부담은 글을 함부로 여기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 글을 쓰는 데 급급해서 꼼꼼하게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오늘을 계기로 글 쓸 때 좀 더 여유를 가져볼 생각이다. 신뢰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채워보고 싶다. 처음으로 돌아가 읽고 쓰고 배우며 다시 한글을 익힐 시간인가 보다. 오늘이 1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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