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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Feb 17. 2024

영역을 표시하는 개처럼

청소를 한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며칠 동안 묵혀 있던 차가운 냉기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싸준 음식과 다른 짐들을 내려놓고 일단 보일러부터 켰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 창문을 열 수도 없어 대신 환풍기를 틀었다. 추운 곳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게 더 낫다. 부모님 댁으로 가기 전 했던 빨래를 걷어 개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뿜어내는 사람 냄새에 보일러의 열기가 더해지며 집안이 조금씩 데워졌다. 역시 주인이 있어야 집이 환해지지. 산책하며 영역 표시를 하는 개처럼 집 안 구석구석을 닦았다. 손길이 닿은 후 깨끗해진 부분이 넓어질수록 뿌옇게 보였던 내 영역이 선명해졌다.


청소를 하다 그대로 바닥에 대(大) 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작은 보금자리가 아늑했다. 며칠 동안 부모님 댁에서 가족과 지내며 일어났던 이런저런 일들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함께했던 이야기가 소설책 읽듯 눈앞에 펼쳐졌다. 혼자서 시시덕거렸다. 나는 돌아올 곳이 있어 매일 밖으로 나가고, 갈 곳이 있어 안으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현재 내가 꽤 행복하다는 사실을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길 떠나 도착한 부모님 댁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왔다. 청소는 오가며 벌어졌던 많은 일을 정리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누워있는 게 지겨워질 때쯤 다시 일어나 청소를 시작했다. 오늘 끝내도 되고 하다가 그만둬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독립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가족과 떨어져 산다기보다는 잠시 집 밖에 머물다 다시 들어가는 개념으로 생각했다. 머릿속에서는 부모님 댁이 여전히 내 집이었으므로 자취집에 들어와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청소도 거의 하지 않았고 음식을 해 먹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던 집이어서 어린 마음에 보일러를 마음껏 틀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임시로 거주하는 곳에서 있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 댁을 나올 때마다 눈물이 났었다. 집 안과 밖의 온도 차가 커서 더 그랬을 것이다. 누가 독립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괜히 서러워 혼자 불쌍한 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깨끗하지도 않고 먹을 것도 없는 집이 춥기까지 했으니 정이 가지 않아 더 그랬을 것 같다.


독립생활 13년 차가 넘어서며 서서히 안팎의 개념이 바뀌었다. 부모님 댁은 가는 곳으로, 내가 사는 곳은 돌아오는 곳이 되었다. 임시로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내 집이었다. 생각이 바뀌면서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집을 청소할 때마다 몸에서 땀이 나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내 손길이 하루씩 쌓여 집 안에서 혼자 즐길 수 있는 일들도 생겼다. 내가 있는 곳이 곧 나였다. 집은 점점 초라하지 않고 단아해져 갔다. 비록 매일 꾸준히 먼지가 쌓이지만 이는 내가 나를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살라는 뜻일 것이다. 귀찮긴 하지만 걸레로 영역 표시를 하고 난 후면 늘 기분이 상쾌하다. 바닥에 누워 양팔과 양다리를 휘저어본다. 이렇게 비벼대도 등판이 깨끗할 거란 믿음이 있다. 스스로 노력해서 내 속에 심은 씨앗이다. 나를 믿는 마음이 쑥쑥 크기를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바닥을 닦았다.


얼마 전 갑자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급하게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한 적이 있다. 마침 담당자가 계셔서 바로 올라오겠다고 하셨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전화를 끊고 나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이 들어왔을 때 흠이 될 만한 부분이 없는지를 살폈다. 더러워서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다. 그래, 내 집은 언제든 이 정도 깨끗하긴 하지. 순간 속에서 만족감이 올라오며 콧대가 하늘로 슬쩍 올라갔다. 남들은 신경도 안 쓸 부분이지만 상관없었다. 벨이 울리고 나는 당당하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일하시는 분이 전기를 고쳐주고 나가실 때까지 단아한 집과 닮은 주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다행히 큰일은 아니라서 전기는 금방 들어왔다. 두 분은 다음에도 같은 일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조치를 말씀해 주신 후 다시 돌아갔다. 나도 뒤돌아서며 혼자 씩 웃었다.


이제 더는 부모님 댁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서러워서 울지는 않는다. 돌아와 들어갈 내 집도 좋기 때문이다. 비교는 남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자신만을 대상으로 할 때 가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분명 예전의 나보다는 깨끗하게 산다. 왜 치우지 않고 살았을까. 내 삶을 스스로 아끼지 않았던 건 아닐까. 이런 나를 보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청소가 자존감과 관련 있는 것은 맞겠다 싶었다. 나는 오늘도 틈틈이 주변을 살핀다. 세수로 얼굴을 깨끗이 하고 방을 닦으며 마음을 정리한다. 그리고 내 자존감이 안녕하길 바란다.  오늘처럼 내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대문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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