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토마토 모종을 사서 화분에 심었다. 15cm 모종이었는데 1m 넘게 컸다. 긴 지지대를 붙여 주었지만 어림없다는 듯 한 달만에 지지대를 넘어섰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길쭉한 몸이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해를 보며 꺾여 있었다. 당황한 나는 화분의 위치를 바꿔가며 자세를 다시 잡아주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괴롭히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한 채 열심히 올라가는 방울토마토를 도왔다.
물을 주며 혼잣말을 했다. 하루 동안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말들을 눈코입도 없는 방울토마토에게 모두 뱉어냈다. 피로한 몸과 마음을 얇디얇은 방울토마토에 모두 얹혀 놓았다. 내가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생각했지만 실은 반대였다. 내 피로감이 무거워 몸이 꺾였던 걸까.
방울토마토에 나만 의지한 것은 아니었다. 날파리는 아예 방울토마토에 붙어살았다. 방 안에 널찍한 공간은 다 제쳐두고 화분 옆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나를 약 올렸다. 방울토마토는 아무 불평도 없이 몸이 꺾여가며 나도 날파리도 받아들였는데 나는 아니었다. 인터넷에 날파리 퇴치법을 검색했다. 계피가루 섞은 물을 뿌려보기도 하고 방충망에 난 작은 구멍들을 메우기도 했다. 날파리가 그냥 싫었다.
길쭉한 방울토마토에 노란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너무 신기해서 꽃을 보고 또 봤다. 꽃이 진 자리에 방울토마토가 생길 것이다. 열매가 맺혀 수확을 했을 때 누구에게 조금씩 나눠줄지를 상상했다. 꽃봉오리가 생겼을 뿐인데 내 마음은 이미 수확을 끝낸 후였다.
시간이 꽤 지났다. 꽃이 피지 않고 그대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떨어진 꽃봉오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왜 그럴까. 내가 잘못 키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는데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인터넷에 글 하나가 와닿았다.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면 열매를 잘 맺지 못하는 이유. 바람도, 나비도, 벌도 없으니 수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실내에서 키울 식물이 아니었나. 괜히 미안했다.
방울토마토 옆에서 이리저리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날파리 한 마리가 내 팔에 앉았다. 순간 짜증이 나서 손을 들었는데 그때 날파리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날파리가 나비와 벌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떨어진 꽃봉오리들도 있지만 잘 피고 있는 것들도 있다. 저건 혹시 날파리가 도와준 게 아닐까.
성가신 날파리들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이 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갑자기 날파리가 좋아 보였다. 나의 갑작스러움에 나도 어이없어 혼자 웃었다. 마음이 날파리보다 더 가벼웠다. 날파리와 나의 우정은 방울토마토는 자가수정을 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마음은 순식간에 또 왔다 갔다 했다. 가볍디 가벼운 것은 날파리가 아니라 나였다.
아직 방울토마토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몇 달 동안 정이 든 탓에 이제는 방울토마토 열매가 없어도 좋다. 방울토마토와 날파리는 다른 말을 하겠지. 힘들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툴툴거리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 아무 말 없이 나의 가벼움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듬직하면서도 한없이 나를 작게 만든다. 미안한 마음에 물을 한 번 더 줘본다. 고맙고 미안하다.
며칠 전 샐러드를 먹는데 방울토마토가 섞여 있었다. 나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감사히 먹었다. 배고플 때 생각 없이 주워 먹던 작은 토마토였는데 지금은 달리 보인다. 작은 몸속에 많은 시간과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불만스럽다고 표현을 하는 것은 인간일 뿐, 대부분은 자신의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다. 새털같이 가벼운 나도 조금씩 익어가면서 묵묵해질 수 있을까.
마나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