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을 봤다. 명량 해전은 12척의 배로 수많은 적들을 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싸움이 채 일어나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에서 두려움이 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순신은 현재 상황에서 조선 수군이 가지고 있는 것을 되짚어 보았다. 정말로 배 12척이 다인가. 고민을 하며 울돌목을 바라보았다. 파도의 움직임과 특유의 파도소리가 무서웠다. 이순신이 걱정하는 것은 적이 133척 이상의 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군사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까지도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이었다. 배 12척에 두려움을 추가했다.
어차피 전투는 피할 수 없고 도망갈 곳도 없었다. 죽고자 하는 자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사용하기로 했다. 우선 배는 일렬로 세웠다. 양적인 열세는 바꿀 수 없는 부분이었으므로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대신 두려움에 대한 걱정을 비틀어 보았다. 조선 수군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양적인 부분이라면 일본 수군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질적인 부분이었다. 앞서 이순신과의 전쟁에서 모두 패한 일본이었다. 이순신의 이름만으로도 벌벌 떨었다. 이순신은 적군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이용하기로 했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조선 수군은 눈앞에 선 수많은 적의 배들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일렬로 선 12척의 배 중 이순신이 탄 배만 앞으로 전진했다. 리더로서 그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주기 위해서는 일본 수군의 두려움이 더 드러나야 했다. 이순신은 앞에 나오는 적의 첫 배에만 초점을 맞췄다. 배를 격파했다. 두 번째 배가 나왔다. 무조건 공격하려는 일본군의 성급한 마음을 이용했다. 백병전을 위해 배와 배가 최대한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포를 쏘았다. 기다림이 무기였다. 두 번째 배가 가라앉았다. 이렇게 차례로 한 척씩 맞서 싸웠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점차 이순신의 배도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백 척이 넘는 적의 배가 눈앞에 떠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조선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이란 생각 이상의 힘을 가진다. 표면적으로는 배와 배가 싸우는 것이었지만 본질은 조선의 양적인 두려움과 일본의 질적인 두려움의 싸움이었다. 이순신이 힘들어할 때쯤 일본 수군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다. 몸집이 우리 수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적군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단 한 척뿐이었는데 그들 눈에는 수십 척의 배로 보였으리라. 주춤거리는 일본을 조선 수군이 지켜보고 있었다. 적의 두려움은 아군의 용기로 전해졌다. 나머지 11척의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의 싸움에서는 양적인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려움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다. 영화지만 역사적 사실이다. 영화 속 내용이라고 한정 짓고 끝낼 수는 없었다. 이순신은 어떻게 두려움을 이용할 생각을 했을까.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울돌목을 보고 있을 때 계획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울돌목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느끼면서 적도 똑같은 마음을 가질 것이라 판단하지 않았을까. 두려움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넘나 든다. 울돌목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울돌목의 흐름을 잘 파악해서 움직이면 어떨까. 이것이 이순신의 출발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 <<명량>>과 <<한산>>을 보며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질투하는 선조와 원균을 다 끌어안았다. 울면서 사정하는 백성들을 보듬었다. 아픈 몸은 쉴 새 없이 이순신을 괴롭혔고 적의 수는 싸울수록 많아졌다. 이순신이 웃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명량 해전이 끝나고 힘없이 앉아 토란을 먹으며 했던 말. "먹을 수 있어 좋구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만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 이순신 인생에 몇 분이나 있었을까. 그 순간을 본 것 같아 눈물이 났다.
고마움과 감사함을 담아 글을 적는다. 내 삶이 이런 훌륭한 분이 목숨 걸고 지켜주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더 귀하게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인생이니 내 마음대로 산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고 이순신의 생애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울돌목의 파도처럼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는 인생에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잘 한번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