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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n 23. 2024

하고 싶어요

금요일 아침, 며칠간 이어진 더운 열기가 살짝 가셨다. 일기예보를 보니 주말에는 꽤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오랜만의 비 소식은 반가웠지만 자전거를 탈 수 없을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기예보를 꼼꼼히 살폈다. 다행히 토요일 이른 아침에는 비 표시가 없었다. 틈새를 찾았으면 비집고 들어갈 일만 남은 것이다. 나는 아침 일찍이라도 일어나 비가 오기 전 자전거를 타겠다고 마음먹었다. 언제든 타라고 하면 차일피일 미루며 할까 말까 고민할 텐데 할 수 없다고 하니 하고 싶어 난리였다. 그래, 주말이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 나는 청개구리 심보가 한심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니 피식 웃고 말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눈을 뜨니 5시 30분이었다. 눈도 덜 뜬 상태로 바로 창문 쪽으로 갔다. 다행히 해는 뜨는 중이었고 습도는 높았지만 바닥은 젖어 있지 않았다. 오늘 목표는 자전거 1시간 30분 타기!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맛이 느껴졌다. 잠도 깰 겸 냉장고에서 토마토를 꺼내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차가운 과즙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며 서려 있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눈곱만 떼고 바로 집을 나섰다. 자전거 보관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앱을 열고 1일 이용권도 샀다. QR코드를 찍으니 "대여가 완료되었습니다." 소리가 나오며 내 앞의 자전거가 나에게 반응을 했다. 너도나도 준비가 됐다는 뜻이었다.


이제 시작해 볼까. 차가운 새벽 공기가 시원했다. 자전거 높이를 나에게 맞게 조절하고 자전거를 돌려 보관소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자전거 도로가 내 앞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비가 오기 전까지 돌아와야 했다. 수업 시간에 몰래 먹는 사탕이 더 맛있는 것처럼 제한된 시간 동안 타야 하는 자전거는 나를 더 흥분하게 했다. Let's Go! 마음만은 철인 3종 경기 선수였다. 첫 페달을 힘껏 돌렸다. 순간 내 콧등에도 시원한 것이 뚝 떨어졌다. 설마. 아닐 거야. 아직 아침이라 말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분명 일기예보에는 오전 9시부터 비가 온다고 했으니 벌써 왔을 리가 없었다. 밤새 맺혀 있던 이슬이 내게 떨어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무심하게 콧등을 문지르며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톡. 톡." 몇 바퀴 못 가서 이번에는 이마가 축축해졌다. 위를 쳐다봤다. 하늘은 구름이 꽉 차 언제 비가 와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자전거를 타려는 욕망이 아무리 이글거려도 두 방울은 무시가 되지 않았다. 우산을 가지고 나오긴 했지만 초보 운전자가 우산을 쓰고 자전거를 탈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까지 하며 자전거를 탈 이유도 없었다.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살짝 고민하다 집 주변을 잠시 돈 뒤 다시 보관소로 돌아왔다. 그 사이 톡톡거리는 빗소리가 더 빨라졌다. "반납이 완료되었습니다." 자전거는 내 안타까움과는 상관없이 처음과 같은 말투로 나와 헤어짐을 말했다. 그래, 혼자서 잘 놀아라. 서운한 마음에 비의 톡톡에 맞춰 나는 툴툴거렸다. 결국, 집을 나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창밖을 보니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려고 했다. 몇 분 전에는 내 눈이 멀어 현실이 안 보였던 것뿐이었다. 괜한 욕심을 부렸구먼. 갑자기 몸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감이 몰려왔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번 주말에 자전거 타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장마철이 시작되면 이런 날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먼저 경험했다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이 조금 가셨다. 토요일은 일기예보가 말한 대로 종일 비가 내렸다. 내일도 그렇겠지. 포기했지만 포기하지 못한 미련이 수시로 창 쪽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내 청개구리 심보는 생각보다 힘이 강력한 것이 틀림없었다. 


일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도로가 반쯤 마른 것이 보였다. 분명 일요일 아침은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날씨도 나와 같은 심보를 가지고 있나 보다. 갑자기 도로처럼 말라 있던 자전거에 대한 내 욕망이 다시 촉촉해졌다. 그리고 어제 아침 했던 그대로 토마토를 입에 물고 눈곱을 떼며 집을 나섰다. 자전거 바퀴를 돌리면서도 언제 비가 올지 몰라 조마조마했지만 오래 참은 후 돌리기 시작한 페달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한창 달리고 있는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졌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근처 터미널까지는 무조건 달려야 했다. 다른 선택권이 없다는 건 마음 편히 닥친 문제를 직면하게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가 본격적으로 왔다. 나는 비가 멈출 때까지 터미널에서 쉬었다. 주변은 어수선했지만 내 마음은 여느 때보다 고요했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할 때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리고 속에서 대상도 없는 반항심이 올라온다. 하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땐 마음을 접기도 하지만 그사이 약간의 틈새라도 생기면 놓치지 않고 욕심을 들이민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 걸까. 혼자서 발버둥 쳤던 주말을 되돌아보며 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 밑에 깔린 욕구를 찾고 싶었다.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아마도 자전거를 타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매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지만 그것만 하고 살면 억울할 것 같아 애써 시간을 더 낸다. 오늘은 뭘 할까.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또 뭘 할까. 나는 평생, 이 궁리를 하며 살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로 영원히 철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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