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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l 03. 2024

눈은 뜨고 출근해야지

사랑도 첫사랑이 제일 기억에 남고, 장사할 때도 첫 손님이 그날의 하루를 결정한다잖아요. 하루 중 아침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 하루가 평안해지려면 시작 단추를 잘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매일 아침 나를 기분 좋게 웃겨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스스로 웃기며 출근할 수밖에요. 학교까지 차로 넉넉하게 3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출근길에 인상을 쓰든 웃든 가는 건 매한가지니 저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어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에는 관심 가질 만한 것들이 많아요. 작아서 놓치기 쉽지만요. 몽롱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숨어 있는 것들 하나씩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주차장을 나오면 바로 차 창문을 열어요. 인근에 있는 빵집 냄새를 맡으려고요. 순식간에 차 안으로 고소한 냄새가 들어오는데 지나가던 사람도 발길을 멈추게 할 정도예요. 저는 입맛을 다시며 곁눈으로 빵집을 한 번 더 봐요. 이뤄지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출근 대신 저곳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요. 출근도 좋지만 하루 쉬는 건 더 좋다는 마음이 제 속에 들어 있는 걸 숨길 수 없는 순간입니다. 먹고살려면 그리할 수는 없으니 대신 빵집과 멀어져 고소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창문을 열어 놓는 것으로 여운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시 창문을 닫고 입에 고여 있는 찹찹한 침을 삼키고 나면 그제야 저도 정신을 차리죠. 실없는 저의 모습에 잠시 웃습니다. 나이를 이렇게 먹어도 빵 배는 따로 있나 봅니다.


큰 대로로 나오면 차들이 제법 많습니다. 다들 몸과 마음의 상태는 고마고만하겠지요. 운전을 하며 옆을 보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차도 옆에 있는 자전거 도로를 보느라고요. 주말마다 그 길로 자전거를 탑니다. 올해 버킷리스트에 자전거로 출퇴근하기가 있거든요. 여러 번 연습을 한 후에 날씨 좋은 어느 날 해 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자전거로 1시간 10분이 걸리더라고요. 간간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괜히 반가워 속으로 오늘 하루 잘 보내라고 인사도 하고요. 나도 달리고 싶어 부러운 마음도 느낍니다. 같은 길인데 차 안에서는 길을 보게 되고 자전거 위에서는 길을 느끼게 됩니다. 같은 옷 다른 느낌으로 길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아요. 자전거 도로를 곁눈으로 보며 제가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주중에는 좋아하는 마음 꾹꾹 눌러놓고 주말에 만나러 갈 겁니다. 그럼, 더 신나겠지요?


언젠가 학생 한 명이 제게 하늘을 본 게 언제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닥친 일을 해결하기 바빠 앞뒤 보지 않고 살던 때였어요.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시간이 지나도 그 질문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너무 여유 없이 사는 게 실감이 나서 힘도 빠지고요. '열심히'를 넘어 '여유 없음'은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누가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오늘 아침!"이라고 말하기 위해 매일 하늘을 체크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차가 신호 대기로 멈추게 되면 늘 하늘을 봅니다. 오늘은 구름 낀 하늘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예전보다는 여유가 있는 게 맞겠죠? 약간의 억지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신호에 걸렸다고 짜증내는 건 없어졌으니 그걸로 만족하렵니다.


학교를 가려면 지하차도 4곳을 지나야 해요. 오르막을 걸어가면 평지보다 두 배의 힘이 들잖아요. 그런데 차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저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차가 저를 밀며 오르막을 올라가 주거든요. 요행을 바라며 사는 것 같진 않은데 가끔씩 차가 오르막에서 나를 밀어줄 때 듬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힘없는 아침이라 더 그 힘이 와닿는 것 같기도 하고요. 차가 마냥 물건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길 위에서 고마운 순간들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차에서 내리면 이젠 학교까지 스스로 걸어야 합니다.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받아 눈 뜨고 출근을 했으니 남은 시간 받은 것 되돌려주며 잘 지낼 수 있겠지요? 휴, 오늘도 학교에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다들 시간 맞추셨길 바랍니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힘드시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좀 유치하지만 가는 길 여기저기에 웃음거리를 만들어 놓습니다. 혼자 노는 건데 뭐 어떻습니까. 이왕에 사는 거 우는 시간보다는 웃는 시간이 더 많은 게 좋잖아요. 스스로 웃기며 삽시다. 내가 나를 웃길 땐 누구보다 시와 때를 잘 맞출 수 있고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아도 뭐라 하지 않으니 편안하잖아요. 그저 나를 위하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시작하는 거니 출근길만큼은 제가 대접을 받는 거지요.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우리는 일을 하러 갑니다. 모두 가볍게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좀 이르긴 하지만 기분 좋은 퇴근을 목표로 달려가 봅시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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