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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l 10. 2024

가성비 떨어지는 인생

끝장을 끝내며

오늘 아침,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친구가 쓴 책은 크게 두껍지 않은 책이었지만 필사는 읽는 속도가 느려 끝장을 보기까지 총 8개월이 걸렸다. 이것보다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 또 있을까. 요즘같이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그냥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좋다. 이미 시대에 뒤떨어지기로 작정했으니 앞서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과 뒤처질수록 편안해지는 마음으로, 때가 꼬질꼬질한 책을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너무 더러워 이젠 중고서점에서도 매매가 되지 않을 책이었다. 그래서 나와 더 잘 어울렸다. 


필사를 하며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발췌한 후 내 생각을 덧붙여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8개월간 아침마다 나와 함께 놀아줘서 고마웠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느린 왈츠 곡 하나를 틀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어 가만히 앉아서는 잘 소화가 안 됐다. 매듭을 잘 지었다는 성취감, 익숙했던 책과 더는 말할 거리가 없다는 서운함, 친구를 웃게 했다는 뿌듯함이 내 안에서 뒤엉켰다. 책과의 만남이 사람처럼 진할 수 있는 건 함께한 시간이 느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뒤죽박죽인 감정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만남이 좋을수록 헤어짐이 힘든 법이니 복잡하게 얽힌 것들도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허무함을 시원한 냉수로 채웠다.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모든 게 내려간 듯 속이 시원했다. 텅 빈 공간에 그대로 앉아 잠시 머물렀다. 책에서 그가 한 말 중 가장 와닿았던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불가사리가 있던 해변 이야기였다. 물속에 있어야 하는데 해변에 머무른 탓에 불가사리들은 몸이 말라가고 있었다. 한 남자가 불가사리를 하나씩 주워 물속에 던지는 것을 본 아이가 그에게 말했다. 


"어차피 다 구할 수도 없어요." 

"그래도 한 마리는 구할 수 있잖아요."


그 대화를 읽으며 내가 사는 것도 해변에 불가사리 던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교사의 의무이긴 하지만 내 작은 손으로 세상 모든 학생에게 올바른 교육을 할 힘은 전혀 없었다. 고작해야 옆에 있는 학생이 나와 있을 때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애쓸 수 있을 뿐이다. 친구는 그래도 불가사리 하나씩 던지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열심히 살아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보며 허탈하고 막막해질 수도 있지만 하나씩이라도 구하고 살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거라고 다독여주는 듯했다. 현실을 꽃밭처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말해주는 그의 이야기가 나는 답답하면서도 좋았다. 


책 뒷부분에 그는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혼자서 많은 일을 했던 하루였다. 그때 한 학생이 주말에 국립묘지에 가서 꽃을 놓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다 놓을 순 없으니 하나라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학생의 말에 그는 불가사리를 던지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학생을 보며 웃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작은 손끼리 마주 잡고 힘을 보태는 순간이었다. 피로가 다 풀리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혼자라는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며 작은 존재인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일은 또 다른 존재를 찾아 손을 잡고 나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 혼자 생각에 빠져있다가,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책에 내 손때가 묻은 것이 새삼스러웠다. 우리도 책 한 권을 사이에 두고 손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작은 존재들이 만나 서로에게 힘을 주며 앞으로 걸어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그의 삶 속에 있었다. 그 시간이 모여 책이 되고 또 나에게 와서 8개월을 보냈다. 그의 시간이 흐름을 타고 나에게까지 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필사가 끝난 후 처음 느꼈던 뿌듯함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사명감으로 바뀐 듯했다. 그가 쓴 책도 하나의 불가사리를 던지는 행위와 같을 것이다. 그를 따라 나도 불가사리를 집어 올려본다. 세상 모두를 구할 순 없지만 한 명은 가능할 것이다. 일단 노력하며 산 그를 먼저 살리기로 했다. 오늘 내가 보낸 메일 하나가 그에게 작은 힘을 줄 수 있었길 바란다. 그동안 덕분에 잘 놀았다.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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