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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l 13. 2024

가짜 엄마 진짜 엄마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어설픈 엄마 느낌이 난다고 했다. 같이 있으면 편안함을 느낀다는 뜻이라 칭찬 같기도 했지만 실제 그들의 엄마가 아니므로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엄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면이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때론 기대에 맞춰줘야 할 것 같아 그 뒤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기도 했다. 최근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의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나로 옆에 있어 줄 수는 있지만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순 없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어떤 면이 그의 어머니와 닮아 호감을 샀다면 머지않아 또 다른 면이 달라 실망을 줄 거라 생각해서였다. 


"그냥 맞장구만 쳐주면 되는 거야."


내 무거운 말에 살짝 서운하고 살짝 겸연쩍은 느낌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듯했다. 엄마는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에게 엄마가 그렇듯 남들에게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내 모습에 대해 곱씹어 보곤 했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굳이 진짜 엄마를 떠올렸다기보다는 편안해서 나온 말일 것이다.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순간이 따뜻하다는 의미로 엄마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저 그 마음만 받아주면 될 것을 괜히 정말로 어설픈 엄마 노릇을 하려고 선을 그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들이 나에게 엄마 앞에 '어설픈'이란 단어를 붙인 것도 나의 이런 면을 알고 있어서였을 거라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어설퍼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지금 생긴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뭐든 잘하고 싶은 욕심에 애만 잔뜩 쓰고 24시간 긴장하며 지내는 나에게 이 말보다 더 힘이 되는 말이 있을까. 말 자체보다는 상대가 말속에 넣은 숨은 의미를 찾는 게 더 맞았다. 우연히 반복해서 같은 말을 듣다 보니 혼자서 과하게 신경을 쓰고 있었나 보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지금보다는 좀 더 가벼워져도 되겠다 싶었다. 나에게 호감을 느끼든 실망을 하든 그건 상대의 영역이었다. 내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나는 평소대로 행동하면 그뿐이라고 결론지었다.


그에게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분위기를 따라 농담처럼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기 시작했다. 고름을 짜내는 시술을 하고 난 후였다. 그는 조금 불편해진 몸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나와의 농담으로 날려 버리는 중이었다. 힘을 빼니 시술 후 그의 통증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엄마든 아니든 전혀 상관없어하는 그를 보며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함께 웃는 와중에 통증 스트레스도 옅어지고 있었다. 샤워하는 것이 불편해도 항생제로 몸이 피곤해도 웃으며 말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때론 철들지 않은 것처럼,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요즘같이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날에는 1차로 더위가 2차로 잡생각이 나를 삶는다. 푹 고아진 나는 가끔은 진한 국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있는 대로 흐물거리며 맥이 빠진다. 이번 주는 학교에서 종일 비실거렸다. 이제 여름 시작일 뿐인데 벌써 처져서 큰일이었다. 척추를 바로 세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위는 잡을 수 없으니 대신 잡생각을 요리해 보았다. 이놈들이 스멀스멀 머릿속에서 올라올 때마다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 뜬금없는 헛소리를 해댔다. 메아리처럼 날아오는 피식 웃는 소리에 내 허리도 조금씩 펴지고 있었다. 기운을 다 뺏긴 후 다시 찾으려 노력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남아 있는 기운을 뺏기지 않는 게 훨씬 수월한 길이었다. 


퇴근 후 엄마한테도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낮에 사람들에게 말해서 성공했던 몇 개의 헛소리를 들려주었다. 재치 있는 엄마는 내 수준에 맞춰 헛소리를 되돌려 주었다. 그 상황이 재미있어 우리는 낄낄거렸다. 무슨 말이든 괜찮았다. 잡생각에 푹 잠겨 흐물거리며 이야기를 해도 오늘처럼 붕 떠서 실없는 이야기를 해도 엄마는 나에게 맞춰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이것이 진짜 엄마와 어설픈 '엄마'의 차이점 아닐까. 오늘도 엄마에게 한 수 배운다.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품은 스스로 노력해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 두렵지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으니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건 맞겠지. 나도 나의 어설픔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설픈 엄마'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하며 잡생각을 줄여나가야겠다. 그래야 덜 흐물거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참 더운 여름이다.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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