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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l 06. 2024

방치와 기다림 사이

대학교 1학년 초, 동아리 친구와 점심 메뉴를 정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 애는 기름진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뻥튀기를 끼고 사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 때여서 기름진 음식이란 말에 침은 고이면서 부담스럽기도 한 이중적인 반응이 나왔다. 살찌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음식을 선택하는 친구를 보며 “넌 살이 없어서 좋겠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진심으로 부러워서 한 말이었다.      


“넌 살이 있어서 좋겠다.”     


친구의 대답을 듣고 순간 아무 말을 못 했다. 가시 돋친 말이 돌아올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였다. 누군가가 내게 “넌 살이 없어서 좋겠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나에게 듣기 좋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그때 나는 못 들은 것처럼 그냥 넘어갔다. 살이 없어 스스로 볼품이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의 입장을 이해해서가 아니었다. 굳이 쓸데없이 싸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후 그는 오랫동안 내게 까칠한 사람으로 입력되어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에게 무례한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현재 나는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이해하며 살고 있을까. 직업이 교사라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관찰하고 대화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학생들을 더 모르겠다. 뭐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학생의 마음 그대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해야 할까. 왜 어제는 가능했던 일이 오늘은 아닌 건지,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로 괴로워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하는지 나는 진심으로 모르겠다. 내 앞에 놓인 숙제에 답을 하지 못해 답답한 날들이 이어진다. 나는 학생들을 이해할 역량이 없는 걸까.      


교사 13년 차인 나는 현재 교사 사춘기를 겪고 있다. 교육이란 뭘까. 처음에는 학생 안에 든 가능성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사춘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속에서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내가 도와줄 것이 없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17살 학생이 자신을 안에 가두고 나오지 않으려 힘껏 애를 쓰고 있는 이유를 일개 교사인 나는 찾을 수 없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 교사는 우울증 약을 먹는 학생에게는 그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전까지는 무엇이든 강요하지 말고 끝없이 듣고 기다리라고 했다. 아무 말 하지 않는 학생에게 교육의 의무를 진 나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     


교사는 학생들의 무기력 앞에 무력해진다. 도와줄 것이 없는 상황은 내가 교사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 같아 가만히 있을수록 죄책감이 든다. 그들은 내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살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열심히 관찰한 후 살이 있다고 말해줄 수 있고 살이 빠져서 좋겠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열심히 응원한 후 살이 빠진 것 같다고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메아리칠 아무런 소리가 없다. 그저 혼자 있고 싶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불편하다고 한다. 학교에 사람이 혼자일 수는 없는데 그것을 가지고 불편하다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쓴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요즘 내가 학생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이었다. 가짜 공감은 힘이 든다고 했다. 매일 퇴근 시간이 되면 축 쳐지는 나를 떠올려 보면 진짜로 공감을 하고 대화를 한 느낌은 아니었다. 교육은 뭘까.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교육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나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힘든 건 하지 않으려고 하는 학생에게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곤 했다. 내 마음속 잡아놨던 교육목표를 계속 뒤로 미루고 미루며 학생이 “YES!”라고 말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벌써 7월이다. 1년 동안 기다리기만 하다가 끝날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직무유기와 기다림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널뛰기 중이다. 학생은 가만히 있는데 주위에서 교사만 이리저리 난리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에 주변만 맴돌며 애를 태운다. 내가 하는 난리가 의미는 있는 걸까. 질문에 질문이 쌓이는 학교에서 나는 오늘도 교사 회의를 연다. 교사만이라도 지치지 않아야 학교가 1년간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지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둔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학생의 생각을 듣고 말하기 위해 학생이 말할 때까지 내 생각도, 불쑥 튀어나오는 조바심도 모두 미룬다. 나는 지금 무슨 교육을 하고 있는 걸까.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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