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나 Jul 27. 2024

파도 위 제자리 찾기

이석증

오늘도 출근 전 집을 한 번 되돌아봤다. 간밤에 덮고 잔 이불도 햇볕에 말려놓고 설거지도 하고 분리배출할 쓰레기도 나와 함께 집을 나올 예정이니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언제부턴가 내 출근 준비에는 집을 정리하는 것이 들어 있었다. 집에서 몸만 빠져나온 아침 후에는 종일 뒤가 찝찝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갔을 때 해야 할 것들이 생각나 괜히 일하면서 더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깔끔한 집을 보니 그제야 아침을 잘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불을 껐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출근이었다. 


학교에 가서도 제자리를 잘 찾았다. 교무실에는 7년째 내가 사용하는 책상이 있다. 굳이 내 이름이 적혀 있지 않더라도 아무도 내 허락 없이 앉지 않는 곳이다. 어느 곳보다 익숙한 장소지만 가끔은 그 자리가 낯설다. 교사가 되기 전, 거리에서 학교를 지나칠 때마다 저 많은 창문 속에 내 자리 하나 없다는 사실에 서러워지곤 했었다. 내 자리, 내 공간에 대한 애착은 아마도 그때부터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외된 생활을 해 본 자는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상황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안정된 지금도 나는 가끔씩 불안함을 느낀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다시 군대에 입대하는 악몽을 꾸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거라 생각한다. 다행히 교무실 자리는 꿈속에 있진 않았다. 속에서 올라오는 불안과는 별도로 현실은 안정적으로 흘렀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일을 시작했다. 내 모습이 꽤나 자연스러웠다.


얼마 전 내 귀에 있던 돌이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부서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울렁이는 바다에 있는 것처럼 약간씩 어지러워 병원에 갔더니 이석증이라 했다. 귀가 균형 감각을 담당하니 돌이 빠져나간 만큼 비틀거리는 거였다. 내가 뭘 잘못해서 잘 있던 돌이 부서졌을까. 이것저것 찾아보니 원인이 여러 개였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왜 어지러운 거냐고 생떼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의사 선생님은 죄가 없었다. 말씀해 주신 대로 내 나이쯤 되면 충분히 올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히 파도가 심하지 않은 바닷가였다. 울렁이는 물결의 리듬에 맞춰 행동도 조금씩 조심스러워졌을 뿐이다.


걱정도 팔자라던데 나를 보면 맞는 말 같다. 나는 일을 하며 지금 앉은자리가 제자리인지 매일 생각했다. 어느 날은 학생들과 함께 지낼 깜냥이 있어 보이다가도 다음 날은 그럴 재능 따윈 없는 종자 같았다. 훔친 게 아니라 시험 쳐서 얻은 내 자리지만 아직까지 제자리에 정착하지 못한 것을 보면 나를 통과시킨 그 시험이 자리의 적합성을 측정하기 적절한 도구였는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내 귀의 돌이 부서진 것도 이런 자잘한 걱정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편안하게 있어도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애를 써야 하는데 이렇게도 매일 긴장을 하니 균형 잡는 돌멩이가 힘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걱정을 사서 하는 나를 보며 그제야 병에 걸린 이유를 알 듯했다.


잘 먹고 잘 자야 돌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했다. 집 나간 돌을 불러드릴 방법을 알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작년부터 노력한 채식 식단을 다시 살폈다. 채식을 하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나는 몸에 좋은 것을 먹긴 하지만 음식을 골고루 먹진 않는 듯했다. 채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당분간은 다시 학교 급식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 끼라도 제대로 먹으면 나머지 끼니는 공부하면서 음식의 종류를 늘리면 될 듯했다. 내 먹거리는 내가 책임지는 삶을 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교훈을 남긴 채 잠시 보류되었다. 서점에 가서 요리 왕초보자들을 위한 책도 샀다. 소개된 음식들부터 하나씩 만들어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살짝 불편해지고 보니 울렁이지 않았던 예전의 삶이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알 것 같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게 행복이 아닐까. 매일 똑같은 날 같지만 나의 하루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이 제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균형을 맞춰야 가능한 일이다. 없어져봐야 귀한 것을 안다 했다. 잘 치료하면 곧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며 살 수 있던 예전처럼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땐 생각 없이 지나치지 않고 행복하다고 느끼고 또 느끼며 살고 싶다. 나의 하루는 거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지금 내 자리에서는 잘 울렁거리며 파도를 타야 한다. 서핑을 배운 기억이 있으니 잘할 거라 믿는다.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이전 09화 처음 뵙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