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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l 31. 2024

사춘기와 갱년기의 공통점

인사이드 아웃2

* 영화 결말은 없지만 내용이 조금 섞여 있습니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 했다. 둘이 싸울 대상이 된다는 건 그만큼 공통점이 있다는 뜻 아닐까. <인사이드 아웃2>를 봤다. 영화는 13세 라일리의 감정들(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 불안이, 당황이, 부럽이, 따분이)을 캐릭터로 만들어 눈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제목 그대로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 보여주는 영화였다. 좀 어이없긴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춘기 소녀의 모습에서 갱년기 소녀인 나를 봤다. 본래 내 성격과는 달리 최근 들어 왜 그렇게 계획을 짜고 또 짰었는지 이제야 알 듯했다.      


영화에서는 주황색 캐릭터인 불안이가 제일 바빠 보였다. 그는 미래가 불안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한 후 수정을 하고 또다시 계획을 짰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를 보고 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힘이 들었다. 왠지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가 스크린에 나올 때마다 좀 쉬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조이도 그렇게 말했으나 불안이는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여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황색 소용돌이는 더 거세졌다. 스스로 만들어낸 소용돌이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앞만 바라보며 조정판을 누르는 불안이를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애가 쓰였다. 어떻게든 멈추고 쉬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찾은 사춘기와 갱년기의 공통점은 불안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꼈다. 불안이처럼 움직이면 누구라도 오래 못 견딜 것이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아야 불안이 이해될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를 도와 주고 싶었던 건 그가 사랑스러워서가 아니었다. 되레 특별히 모난 곳이 없는데도 내 눈에 불안이는 살짝 밉상스럽기까지 했다. 옆에서 여러 캐릭터가 현재 라일리의 상황을 알려주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의 모습에서 나를 본 게 틀림없었다. 안쓰러움과 짜증이 내 안에 섞여 불안이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최근에 나는 불안해서 계획을 짜고 또 짰었다. 그대로 실행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지만 뭐든 계획을 세워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내가 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야만 했다. 만약 지난 시간 동안 움직이는 것 대신 잠시 쉬면서 그 상황을 그대로 두었다면 어땠을까.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지금의 나를 본다. 힘이 빠져 강제 종료된 내 불안은 누워 있으면서도 미래를 향해 습관적으로 홀로 달려가려고 헛발질을 한다. 앞으로도 내 감정 조정판을 불안이에게 맡겨야 할까. 


지난 내 모습이 괜찮았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불안이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응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반대였다. 그가 측은했고 안타까웠다. 응원이 아니라 그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불안이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순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거였다. 불안이를 대하는 다른 캐릭터들의 불편한 모습을 보며 내가 열심히 살면 살수록 주변 사람들이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열심히 살고 싶은 건 불안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다. 누가 보면 욕할지도 모르지만 융통성 없는 나는 '열심히' 말고는 달리 사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지금처럼 멈춰진 상황이 당황스럽다. 영화를 보며 현재 내 상태를 오롯이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하루를 이렇게 보낼까.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움직이지 않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으니 편안해지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지금 나는 쉬고 싶구나. 갱년기도 불안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도 해피앤딩이었으니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다시 생각해 보면 갱년기 초기는 불안이가 조정판을 잡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내 안에도 여러 감정이 있다. 항상 그럴 순 없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대문사진 출처 : 나무위키 '인사이드 아웃' 캐릭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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