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언젠가 교사는 다른 직종의 사람보다 덜 늙는 경향이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웃으며 넘기긴 했지만 영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매일 보는 사람이 17살이니 무의식적으로 나도 그들을 따라가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매년 학생들과 계약을 한다. 계약 기간은 1년, 내 역할은 길잡이다. 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같이 걸으며 방향을 제시한다. 내가 나이를 먹는 것과는 상관없이 고객은 늘 17살이다.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어른들은 자신의 미숙함을 숨기기에 급급해 함께하면 재미가 없다. 재미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건 교사만이 가질 수 있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길잡이는 길의 방향뿐만 아니라 길을 갈 때 걸음걸이와 마음가짐도 알려줘야 한다. 길을 완주하느냐 마느냐는 학생들의 몫이지만 제대로 잘 걸을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해 주는 건 교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길잡이 역할로 시작하지만 학생들의 다리 근육이 제법 붙기 시작하면 길벗으로 역할을 바꾼다. 내가 타고난 길치라는 사실을 고백할 타이밍이기도 하다. 나보다 길의 방향을 잘 찾는 학생들을 보면 슬쩍 위치를 바꿔 그들 뒤에 선다. 그리고 얹혀 가도 되겠냐고 물어도 본다. 길잡이의 직무유기 같아 찔리기도 하지만 앞장서서 나를 이끌어 가는 경험 또한 그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후로는 죄책감까지 접고 편안하게 기댄다.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한다. 학생들은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자주 내비친다. 여기까지는 내가 사춘기일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외는 확실히 다르다. 요즘 학생들은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뚜렷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17살일 때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그리고 그만큼 더 불안해한다. 그들의 불안이 안쓰러워 예전에는 무턱대고 내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내가 실패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이야기해 주면 그들의 불안이 외롭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흑역사는 너무 오래되어 그들과 연결이 잘 안 되었다. 요즘은 '라떼'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세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낀 후로는 내가 그들을 다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길을 제시해 줄 수 없는 길잡이는 그들이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몸에 힘을 빼고 옆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유학교에서 근무한 지 7년째다. 나는 그간 무수히 많은 말을 했었다. 내가 했던 말들은 지금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길잡이였던 내 말은 실제로 제자리를 잘 찾아갔을까. 아니면 오히려 독이 됐을까. 반대로 내가 한 말을 나는 다 지키며 살고 있는지 누군가가 물을 수도 있겠다. 자기 객관화를 하는 시간은 힘들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답은 NO다. 나의 허접한 대답을 듣고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면 나는 미숙함을 드러내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정도의 용기가 학생들과 함께할 길잡이의 자격 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미야 잡화점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
9월 13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합니다.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으셨던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답장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요. 기탄없는 의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처럼 가게 셔터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란 책을 읽었다. 잡화점 할아버지께 고민 상담을 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백지를 보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려 답장할 만큼 정성을 다해 고민을 듣고 답을 하시는 분이셨다. 이런 할아버지조차도 끝없이 했던 고민은 자신이 한 상담이 오히려 해가 된 건 아닌지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미안하지만 그의 고민은 나에겐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좋으신 분도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시는구나 싶어서였다. 할아버지의 공고문을 읽으며 내가 예전에 학생들에게 한 말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내 영역 밖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뱉은 말에 대해 끝없는 고민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교사 생활이 끝날 때까지 나이를 먹지 않는 17살 학생들과 매년 1년씩 계약을 할 것이다. 그들과의 계약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끝없이 나의 미숙함을 먼저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권위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나미야 할아버지처럼 정성을 다해 학생을 대한다면 그것만으로 대화가 될 거라고 믿고 싶다. 어쩌면 교사는 길잡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은 이미 각자의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갈 길을 잘 찾아가는지 지켜봐 주고 마음을 내어주는 할머니 역할이 나에게 더 잘 맞겠다 싶기도 하다. 다행히 나는 나이를 먹는다. 그만큼 진짜 할머니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역할이 아니라 진짜 나로서 학생들과 대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대 차이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 같다. 편안한 할머니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