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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Aug 10. 2024

곗돈 탄 날

일본 교직원 50여 분이 학교를 방문했다. 분명 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교실로 들어왔다. 시작 시간이 다가올수록 손에서 땀이 났다. "곤니찌와. 와따시와 마나데스" 나는 혼자서 한글로 적힌 일본어 인사말을 중얼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만 지나면 사람들 앞에서 20분 동안 자유학교에 대해 설명을 하고 질문에 답해야 했다. 교사가 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학생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도 여전히 긴장되는 나였다. 그러니 통역까지 들어간 발표가 부담이 되는 건 당연했다. 발표를 하기 5분 전까지 화장실을 세 번은 갔다. 도망은 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 순서가 왔다. 마이크를 잡고 앞을 보니 살짝 차가워 보이는 통역관이 내 바로 앞에 있고 나머지 교사들은 통역관의 음성이 들리는 이어폰을 꽂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게 한숨을 쉬고 웃으며 어설프게 "곤니찌와"를 외치며 발표를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긴장감 한 사발에 취한 탓인지 발표할 때는 크게 떨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를 지탱해 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무래도 자유학교 교육과정이 좋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이야기를 할 때 고개를 끄덕여주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발표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응원이었다. 


자유학교를 포함한 3개의 학교 소개가 다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여러 가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사람들의 표정이 괜찮아 보여 다행이었다. 내가 받은 마지막 질문은 "자유학교 교육과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생 수가 4명이라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적은 것입니까?"였다. 질문을 한 사람은 일본 문부성(한국의 교육부와 같음)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진지한 그의 표정에서 자유학교에 대한 진심 어린 호기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학생 수가 적은 것은 오늘 내가 제일 숨기고 싶은 부분이었다.


현재 학교 상황을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지를 고민했다. 마이크를 쥐고 몇 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미리 받았던 팸플릿에서 오늘 오신 분들이 지속가능한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자유학교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자 학교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나는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는 수학능력평가의 형태가 바뀌지 않는 한 대안학교에 대한 불안은 크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대안교육의 교육과정 자체는 좋으나 한국 교육의 큰 흐름이 협력이 아닌 경쟁 구조 속에 있었다. 뜻이 좋다고 현실에 모두 적용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자유학교에 근무하면서 느꼈다고 말했다. 


내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고갯짓을 하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자유학교가 혼자가 아니라고, 힘들겠지만 좀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힘을 모아보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국적을 떠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났다. 솔직하게 자유학교의 현재를 말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바쁜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힘을 배우는 것이어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학교는 존재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오늘의 내 발표가 나 개인의 긴장을 너머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예정된 시간은 지났지만 행사를 주관하는 선생님이 자유학교를 위해 시간을 더 내어주셨다. 행사가 끝나고 시간이 늦어져 죄송했다고 말씀드리니 자유학교를 지켜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을 해달라고도 하셨다. 오늘 곗돈 타는 날인가. 최근에 일을 하며 혼자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참고 지내다 보면 오늘처럼 뜻하지 않은 날을 만난다고 누군가가 내게 어깨 토닥이며 말해주는 듯했다. 행사가 끝난 후 교무실 자리에 돌아와 무사귀환을 뜻하는 한숨을 쉬었다. 창밖에 하늘이 쨍쨍거렸다. 오늘만큼은 더위가 성가시지 않았다.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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