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잘 지내다 갑니다

템플스테이 한달살이 마무리

by 마나

아침 공양 때 간식으로 받은 백설기를 꺼냈어. 40분이나 일찍 도착한 덕분에 점심은 달리는 버스 안이 아니라 안정감 있게 정류장 벤치에서 먹을 수 있었지. 절에서 갓 나온 후라 담백한 백설기 맛은 익숙한데 정류장 바로 옆에서 들리는 도로 공사 소리는 거슬렸어. 그래도 어쩌겠어. 속세를 떠났다 돌아온 건 나니 다시 적응도 직접 해야지. 뻑뻑한 떡을 천천히 씹었어. 절에서 하는 마지막 식사로는 꾸밈없는 백설기가 딱이었어. 급할 것도 없고 씹을수록 단맛도 나서 기계 소리를 넘어 먹는데 집중할 수 있어 좋았어.


5주 간 절에서 살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어. 거창 붓다선원에서 4주, 합천 해인사에서 1주를 보냈지. 두 곳은 규모는 달랐지만 모두 겉은 조용하고 속은 깊었어. 좋아하면 닮아간다잖아. 나는 시간이 지나며 두 곳에 익숙해지고 있었어. 묵언을 하는 생활이 편안했고 나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게 좋았지. 그래서 그런지 절을 떠나며 아쉬움이 남더라. 겨우 잡생각에서 벗어나 마음이 가벼워졌는데 돌아가면 또 다른 걱정거리로 채워질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 내가 유리 같았어. 깨끗하게 씻기는 했어도 단단하지 못해 곧 깨질 것 같았지.


불안함을 없애고자 마지막 떡 조각을 크게 물고 무아지경으로 오물거렸어. 앞에서 스님 한 분이 걸어오고 계시는지도 모를 정도로 씹는데 진심이었지. 입 안에 떡이 제법 컸기 때문에 스님이 내 옆에 오실 땐 반도 삼키지 못한 상태였어. 당황한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닦으며 허리를 숙여 합장을 했어. 스님은 내 손에 든 남은 떡을 무심하게 힐끗 보시더니 옆에 앉으시며 말씀을 시작하시더라고. 나는 입에 든 것은 침으로 녹이고 손에 든 것은 비닐에 다시 넣으며 스님 말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 갑작스럽게 대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스님과 함께 버스를 탄다 생각하니 혼자 속세로 들어가야 하는 불안함이 사그라들어 좋았어.


스님은 나를 보살이라고 부르셨어. 이제 이렇게 불리는 순간도 별로 없겠구나 싶어 더 정겹게 느껴지더라. 스님은 버스 값을 지불하실 때 흰 봉투에 든 지폐 중에 천 원짜리 하나를 꺼내 돈 통에 넣으시고 자리에 앉으셨어. 뒤따라 들어가며 카드로 값을 지불한 나는 스님의 아날로그 지갑이 좋아 혼자 싱긋 웃었어.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계속 아날로그 세상에서 살고 싶은데 달리는 버스는 디지털 세상으로 가고 있었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스님은 대화를 계속 이어가셨어. 나보고 무엇이든 겉만 보지 말고 제대로 본질을 파악하라고 하시더라고. 그리고 농담으로 경상도 사투리로 "그기 뭐꼬?"라는 질문이 도움이 될 거라 말씀하셨지.


스님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서 온화함을 느꼈어. 본질을 보라고 하는 건 있는 그대로 대상을 보는 걸 뜻했어. 절에서 여러 번 들은 말이었는데 마지막 날 스님께 다시 들으니 밖으로 나오며 흔들렸던 내 마음이 다잡아졌어.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함은 걱정이 앞서 생기는 허상에 불과하니 가볍게 넘기는 게 맞겠다 싶더라. 먼저 내리시는 스님께 감사함을 전했어. 그리고 배운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렸지. 맑은 스님의 표정은 아직 나는 찾지 못한 내 본질을 이미 다 꿰뚫어 보시는 듯했어.


나를 더 알아갈수록 불안한 기색 대신 스님처럼 맑은 안색을 나도 가질 수 있겠지. 아마도 고요한 마음이 맑음의 연료일 거야. 이 마음은 책 '연금술사'에도 나오더라고. 주인공 산티아고도 여행을 하며 자신을 알아가거든. 인생의 이정표는 알고자 노력하는 자에게만 보인다고 했어. 그것들을 찾아 따라가다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있고 말이야. 산티아고는 여행하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어. 그들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사기를 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그가 스스로를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 그는 여행을 하며 점점 더 고요해졌어. 책을 읽을 때는 그 침묵을 다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알 것도 같아.


나도 산티아고가 떠난 여행길을 따라가고 있어. 가다 보면 내 길이 보이겠지. 그때가 되면 나도 고요해질 수 있을 거라 믿어.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스님도 나에게 "이기 뭐꼬?"라는 이정표를 보여주셨어. 내가 열심히 삶의 방향을 찾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주신 거라 생각해. 스님이 내린 버스 안은 공허했어. 나는 눈을 감고 빈자리의 여운을 느꼈지.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보살에게 스님이 보여주신 마음은 언젠가 이름 모를 다른 이에게 돌려주겠다고 다짐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속세의 출발점인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어. 시끌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그제야 사람들 속으로 들어온 것이 실감 났어.


터미널 안에는 TV 소리가 들렸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각각 대화를 하고 있었어. 붓다선원에서 큰스님이 명상은 어떤 곳에서든 가능하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났어. 나는 스님의 말씀을 따라보기로 했지. 그래서 30분 뒤에 올 버스를 기다리며 눈을 감고 명상을 해봤어. 내공이 부족해 잘 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어. 절에서 배운 명상과 묵언을 앞으로의 내 삶에 잘 녹여내는 것이 절에서 받은 숙제인 것 같아. 절에서 지낸 덕분에 잠시 내게 들어온 고요함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숙제 열심히 하며 단단해지려고 노력할 거야. 지금의 나는 유리가 맞아. 하지만 깨지기 쉬운 게 있다면 반대로 붙일 쉬운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그만 불안해하고 일단 가 보자고.


대문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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