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

제주도 한달살이 : 다크투어

by 마나

오름을 올라가는 올레길 양쪽은 모두 농사짓는 땅이었어. 마침 점심 때라 일하시는 분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계셨지. 내가 걸으며 내는 인기척에도 뒤돌아보지 않는 걸 보니 낯선 사람이 지나가는 것에 익숙하신 듯했어. 덕분에 나도 마음 놓고 그분들을 볼 수가 있었고 말이야. 작년까지 학생들과 함께했던 농촌봉사활동이 생각났어. 땀 뻘뻘 흘린 후 새참으로 먹은 홍시 생각에 혼자 조용히 침도 흘렸지. 뭘 드시는지는 몰라도 꿀맛이겠다 싶더라. 그 옆에는 작물들이 햇볕을 쬐고 있었어. 어제 온 비 때문인지 이파리 하나하나가 튼튼해 보였지. 도시 촌놈이라 크고 있는 식물이 뭔지 알 순 없었지만 열심히 커서 저분들 반찬이 하나 더 늘어날 정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오름은 산봉우리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래. 보통은 제주도에 있는 낮은 산이나 봉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그날 내가 오른 곳은 섯알오름이었어.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 도착했는데 크게 특별할 게 없는 보통의 시골이더라고. 분명 알뜨르비행장이 있다고 했는데 비행기가 있을 곳이 전혀 아니었지. 길에 있는 작은 표지판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그냥 지나가고 말았을 거야. 농사짓는 땅 사이사이에 창고와 같은 게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일제강점기 때 사용했던 비행기 격납고였어. 제주 도민을 강제 동원해서 만든 곳이었지. 1930년대 태평양 전쟁 때 있었던 비행기 자살 테러인 가미가제 특공대가 훈련받고 출격한 곳이기도 했어.


아직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일이었어. 그때를 지금 내가 다 알 순 없었어. 내 눈앞엔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농촌 풍경만이 있었으니까. 섯알오름의 고요함이 그저 만들어진 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어. 농부들이 식사를 하고 계신 바로 앞뒤옆에 격납고 19곳과 일본 군대의 지하벙커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어. 처음엔 없애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볼 수 있고 그때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만약 저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때 피해자들이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하기도 힘든 상처를 매일 보며 산다는 뜻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어. 문득 드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라. 그리고 풍경이 평화로워 보이면 보일수록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어.

섯알오름5.jpg 섯알오름 일제강점기 비행기 격납고
섯알오름 비행기 격납고.jpg 격납고가 밭 중간중간에 있다

섯알오름의 원래 명칭은 작고 낮아서 알오름이었는데 송악산 서쪽에 있다 하여 섯알오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대. 불행히도 이 작은 오름에는 일제강점기를 지난 시대의 흔적도 남아 있었어. 오름을 좀 더 올라가면 예비검속 희생자들을 암매장한 터가 나와.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 계엄군이 북한군이 내려오면 도와줄 수도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모아 미리 죽인 곳이었지. 예비검속이라 했어. 저지를 죄를 미리 예측해서 사람을 죽이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거였어.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는 분노가 일지 않았어. 아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어. 우리가 우리를 죽인 거였으니까. 1945년 광복을 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잖아. 겨우 일본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사람들이었을 거야. 어떻게 하다가 한국인이 한국인을 죽이는 현실이 됐던 걸까. 학살터를 보며 책에서 보고 상상한 것만으론 느낄 수 없었던 공포감이 들었어. 도망가고 싶었지만 깊이 파인 구덩이가 눈에 밟혀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지. 섯알오름으로 끌려오면서 마지막임을 직감했던 사람들은 신고 있던 검정고무신을 벗어 길에 던졌다고 했어. 가족들이 그것을 보고 찾아오라는 뜻이었지. 비석 옆에 놓여 있는 검정고무신이 움직일 것만 같았어.


섯알오름 옆에는 송악산이, 또 그 옆에는 바다가 있었어. 주변에 있는 산방산, 형제봉, 마라도, 가파도가 한눈에 보여 제주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나 혼자 정한 내 아지트였지. 날씨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곳이라 갈 때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떤 건지 볼 수도 있었어. 송악산 앞바다와 섯알오름의 구덩이는 걸어서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어. 그날은 아지트로 가는 내 발걸음이 유난히도 무거웠던 것 같아. 걸으면 걸을수록 섯알오름에서 본 농부들이 일본과 한국, 북한과 남한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고 있는 듯했으니까. 누가 그 숙제를 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이곳이 속까지 평화로울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까.


질문에 파묻혀 천천히 걷다 보니 익숙한 송악산이 보였어. 산책 삼아 걸을 정도로 작은 산일뿐인데 그 속에 수십 개의 일본 동굴 진지가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겠더라고. 아는 만큼 보여 다행이면서도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도 있었어. 더는 해맑을 수만은 없었으니까. 바다는 여전히 말이 없었어. 나도 따라 조용히 송악산 앞 벤치에 앉았지. 그리고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안다고 속말을 했어. 섯알오름에서 출발한 가미가제 특공대가 송악산 앞바다를 보며 서럽게 날아갈 수밖에 없었을 마지막 순간을 같이 기억하자고 약속도 하고 말이야. 눈앞에 보이는 제주도가 너무 예뻐서 나도 덩달아 서러웠던 것 같아. 늦게나마 어른이 되려나 보다 했어.


제주도 길 위에는 추모비나 위령비를 많이 볼 수 있어. 섯알오름은 그중 하나일 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섬 전역에 있다는 뜻이었지. 그때와는 다른 지금의 평화로운 제주도를 걸으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됐고 그만큼 변해갔어. 그리고 숨어 있는 역사를 따져 보는 습관도 생겼어. 언젠가는 제주도가 진짜 평화로운 곳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관광객뿐만 아니라 제주 도민들도 편안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곳 말이야. 그때까지 이곳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써.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된다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느끼는 무서움을 하루바삐 없애고 싶으니까.

섯알오름6.jpg 섯알오름 예비검속으로 사람들을 암매장한 터
섯알오름1.jpg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섯알오름7.jpg 길에서 본 섯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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