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삿포로

일본 한달살기 : 중고 자전거 사기

by 마나

나는 일본 하면 자전거가 먼저 떠올라. 사람들이 차 대신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다니더라고. 예전에 여행했던 곳 대부분이 시골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떨 땐 거리에 차보다 자전거 수가 더 많았어. 그때마다 소박한 일본의 분위기가 동화 같다고 생각했어. 동화책에서만 있는 곳이면 꿈은 꾸되 현실에서 바라진 않을 텐데 실제로 있는 걸 눈으로 보고 있자니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몸이 달아오르더라고. 퇴근 후 마트에서 산 음식을 자전거 앞에 넣고 신나게 달려 집에 들어가는 생활은 생각만으로도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느낌이었어.


"아들이 쓰던 낡은 자전거가 있어요. 보시고 사용하고 싶으면 쓰세요."

이번에 한달살이를 하면서 꿈이 이루어졌어. 숙소 주인에게 근처에 자전거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으니 창고에서 한 대를 꺼내주시더라고. 첫인상은 되게 멋있었어. 낡았다고 하지만 광택 나는 연두색 몸통은 아직 쓸 만하다고 내게 어필하는 듯했지. 나는 꽤 덩치 큰 자전거를 주인에게 받고 어쩔 줄을 몰랐어. 일본에서 매일 쓸 수 있는 자전거가 갑자기 생긴 사실이 믿기지 않은 것도 있고 고작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전거 경력으로 큰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을지 걱정도 됐거든. 까치발을 해야 겨우 발이 닿았어. 불안했지만 다행히 천천히 굴러가긴 하더라.


다음 날, 자전거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갔어. 그곳엔 녹슨 부분이 전혀 없는 새 자전거들이 한쪽에 진열되어 있었지. 내가 탄 자전거가 왜 낡았다고 하는지 그제야 알겠더라. 그래도 내 눈엔 내 손에 있는 것이 제일 멋져 보였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 멋져서 고민이었지. 좋은데 내겐 너무 버거운 당신이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이 큰 자전거를 좀 더 안전하게 탈 수 있을지만 고민했어. 점원은 앞쪽 타이어를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고. 8천엔(8만 원가량)이 든다고 했지. 내가 한 달 정도 탈거라고 말하니 살짝 고민하다 그럼 바꾸지 말고 그냥 타도 될 거라고 하시는 거야. 나는 애매한 점원의 태도에 더 찝찝해진 상태로 가게를 나왔어.


그래도 자전거를 타는 동안만은 꿈만 같았어. 상상만 하던 장면이었는데 내가 진짜로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가서 음식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소박하고 깨끗한 일본의 도로가 내 동화책의 배경화면이었어. 다리가 닿지 않는 높은 곳이라 불안했지만 천천히 한 바퀴씩 돌리며 즐기려고 노력했지. 불안과 재미가 범벅이 되어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어. 집에 도착하고 나니 절로 한숨이 나오더라. 무사히 도착했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아무래도 불안이 이긴 것 같았어.


좋은데 불안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큰 자전거를 앞에 모셔두고 곰곰이 생각했어. 좋은 자전거이긴 하지만 통제할 수 없다면 내 것이 아니라는 뜻 아닐까. 그래도 자전거가 있으면 더 많은 곳을 갈 수도 있잖아. 지난달에 다친 무릎 때문에 많이 걷지도 못하고 차를 한달살이 내내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했던 참이었어. 혼자서 그림의 떡 같은 자전거만 하염없이 보고 있는데 문득 중고 자전거 파는 곳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발견하면 어떻게 할지 상상이 가지? 나는 1초 망설임도 없이 바로 구글 지도를 뒤졌어. 그리고 허름한 중고 자전거 매장 하나를 찾았지. 반가워서 숨 넘어가는 줄 알았어.


구글 지도에 뜬 인터넷 후기에는 6,000엔(6만 원가량)이면 중고 자전거를 살 수 있다 했어. 목돈이긴 했지만 대중교통비가 비싼 삿포로에서 한 달 정도 자전거로 여행한다 생각하면 꽤 괜찮은 장사다 싶었지. 다음 날, 흥분된 마음으로 가게를 찾아갔어. 문 열린 가게에는 간판도 주인도 심지어 자전거도 몇 대 없더라고. 일반 가정집 창고 같은 느낌이었는데 자전거마다 가격표가 붙여진 걸 보고서야 내가 제대로 찾았구나 했어. 가게 바로 앞에 조그마한 자전거 한 대가 이제 막 수리를 한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어. 인연이 되려는 건지 홀로 떨어진 자전거를 보니 홀로 한달살이를 하는 나와 닮은 것 같아 계속 눈길이 갔지. 차고 안에 모여 있는 자전거들과는 달리 표도 없어 가격도 알 수 없었지만 사야겠다고 생각했어.

급할 것 없는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어. 그리고 가게 앞 낡은 벤치에 앉아 자전거를 사고 싶은데 얼마인지, 한 달 후에 되팔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적어 번역기에 돌렸지. AI번역기는 음성은 못 알아들어도 글자는 정확히 인지를 하더라고. 하고 싶은 말까지 준비를 끝낼 즈음 골목 끝에서 한 사람이 나를 보며 아는 체를 했어. 가게 주인이셨지. 일본어로 말씀하시는 주인에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준비한 문구를 보여드렸어. 그리고 홀로 있는 작은 자전거 어떠냐고 여쭈어 봤지. 주인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주셨어. 그리고 내게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보라고 손짓을 하시더라고. 시험 삼아 처음 페달을 돌리는 데 어찌나 편안하던지 날아갈 것만 같았어. 여기가 내 자리구나 싶었지. 이제 더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어.

중고 자전거 값은 생각한 가격 그대로 6,000엔이었어. 그리고 한 달 후 다시 가지고 오면 2,000엔을 돌려주겠다고 하시더라고. 이보다 더 좋은 거래는 없었어. 신나 하는 내 모습에 주인도 마음이 좋으신 듯했지. 나는 약속된 날짜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자전거를 데리고 나왔어. 이전 자전거에 비해 한참 밑으로 내려온 터라 마치 내 발이 두 바퀴가 된 듯했어. 태어나 처음 가져본 내 자전거였어. 더 좋은 자전거로 바꿔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내 것 말이야. 나는 자전거와 첫날인 걸 기념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홋카이도 대학에 갔어. 그리고 학교 학생들과 같이 자전거로 경내를 실컷 누볐지. 거리엔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었어. 이젠 가고 싶은 곳이면 버스나 지하철 노선 따지지 않고 내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내일은 어디를 갈까. 어디를 가면 내 자전거가 더 신나게 달릴 수 있을까. 첫날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 나는 숙소로 돌아오면서도 계속 혼자서 중얼거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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