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책방

태백 한달살이 : 북스테이

by 마나

사람들이 서점에 오기엔 이른 시간이었어. 나는 딱 서점 주인처럼 보였을 거야. 부스스한 얼굴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폼이 꽤 자연스러웠으니까. 실내는 밤 기운이 남아 여름답지 않게 서늘했어. 밖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는 아직도 잠이 덜 깬 내가 정신 차리기 딱 좋은 알람이었고 말이야. 일부러 문을 열어뒀어. 그리고 익숙한 듯 커피 한 잔을 타서 책상에 앉았지. 작은 서점에 홀로 앉아 시골 냄새를 맡고 있으니 여기가 천국인가 싶더라. 현실감이 없어 더 기분 좋은 아침이었어.


첫눈에 반해본 적 있어? 나는 한달살이를 하기 위해 강원도 태백으로 들어오는 순간 처음 그걸 느꼈어. 산 중턱에 붕 떠 있는 듯한 곳 같았거든. 사방은 나무로 빽빽하게 찬 산들이 에워싸고 있었어. 평소에 막연하게나마 상상하곤 했던 동화 속 분위기였는데 8월답지 않은 시원한 날씨까지 더해져 나의 현실 감각을 더 떨어뜨리더라고. 차라리 다른 나라에 온 거라면 더 빨리 적응을 했을 거야. 같은 나라 다른 느낌 덕분에 현실에 발을 붙이기까지 며칠이 더 걸렸지.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던 시간이었어. 작은 도시에 있는 더 작은 독립 서점에서 더더 작은 나는 그렇게 북스테이를 시작했어.


서점은 태백을 축소시켜 놓은 것 같아. 동화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작은 공간에 정이 듬뿍 들었어. 첫눈에 반한 사랑이 끝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기고 말이야. 서점이 좋아질수록 한 달 동안 뭘 하고 살면 좋을까를 고민하게 돼. 욕심이겠지. 한달살이를 시작할 때마다 편안하게만 있다 오자고 다짐하는데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금세 마음이 달라지니까. 못 말리는 내 호기심이 새로운 공간에서는 쉴 새 없이 튀어나와. 덕분에 해야 할 일도 없으면서 혼자서 바쁘지. 요즘은 서점을 하루에도 몇 번씩 기웃거려. 웃기지? 사람은 머무는 곳을 닮는다잖아. 있다 보면 나도 동화 같아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어제는 혼자서 손님도 받았어. 무인 책방이라 다들 알아서 계산을 하고 가는 시스템인데도 왠지 떨리더라고. 그래서 원래도 조용히 있었는데 손님이 들어온 후로 나는 더욱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지. 계산을 하겠다고 눈짓을 하셨을 때 작동할 줄도 모르면서 마음만 앞서 카드 기계 앞으로 다가갔어. 손님은 표정만으로 내가 서점을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파악하신 듯하더라고. 그래서 내게 크게 의지하지 않고 계산을 알아서 하셨지. 책 두 권을 들고나가시는 손님을 보며 꾸벅 인사를 했어. 마치 내 물건을 팔아준 것처럼 고마운 마음이 들었거든. 나에겐 잊히지 않을 첫 손님이었어.


태백에 있는 '시시한 책방'은 8명이 모여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 중이래. 북스테이를 시작한 지 8일이 되지 않은 나는 매일 다른 주인과 첫인사를 해. 내가 머무는 곳을 만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제법 재미가 있어. 각자 개성이 있는데 그게 서점 안에 부분 부분 다 들어있는 것 같더라고. 저곳은 저 주인이 꾸민 것 아닐까. 이 책은 어제 만난 주인이 고른 걸 거야. 혼자서 숨은 그림 찾듯 추측을 해 봐. 하긴, 8명이 함께 만든 공간이니 서점 안에 8개의 흔적이 있는 건 당연한 거겠지. 그들은 동화 같은 장소를 아지트로 두고 살고 있었어. 내 눈엔 세상 누구보다 부자 같더라. 부러웠어.


주인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미심장하게 웃더라. 서점을 경영할 땐 8명이 모두 만장일치를 해야 해서 힘들기도 하다면서 말이야. 각자 생업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어. 서점에서 파는 커피 가격을 정하는 데에도 2시간이 걸렸다고 했으니 예쁜 서점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토론을 했겠어. 정성이 많이 들어가서 서점이 이렇게 예쁜 거구나 했어. 그들은 힘들겠지만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었지. 현실적으로 적자일 게 뻔한 작은 독립 서점이었어. 서로 뜻이 달랐다면 지금쯤 벌써 없어지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서점은 가게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듯했어. 그 마음이 모여 서점을 동화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거고. 자신과 결이 맞는 사람이 7명이나 더 있다는 것만으로 서점은 존재할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였어.


작은 서점이라 책이 많진 않았지만 다 둘러보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어. 정성스럽게 가꾼 공간이라 나도 허투루 볼 수가 없더라고. 전시된 책들은 모두 8명의 생각을 거쳐온 것들이었어. 그래서 내가 예전에 읽은 책을 발견하면 대형 서점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반가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도 있구나 싶어 동질감도 느껴지고 말이야. 책장에 있는 책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일부러 독립 서점만 애용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혹시 서점 주인과 소리 없는 대화를 즐기셔서 오시는 걸까. 여태 알지 못했던 어떤 세상을 알게 된 느낌이었어.


태백에 오기 전까진 독립 서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서점은 책을 사는 곳으로만 여겼거든. 대부분 인터넷으로 책을 사거나 오프라인에서는 중고서점을 이용하기 때문에 더욱 관심 밖이었지. 그런데 있어 보니 알겠어. 사람들이 왜 독립 서점을 운영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왜 작은 서점을 더 찾으려고 하는지 말이야. 세상에는 책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잖아. 그중 어떤 책을 선택해 전시를 할 것인지는 규모가 작은 서점일수록 더 고민을 하지 않을까. 주인이 손님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독립 서점이었어. 팔린 정도로 등수를 매겨 놓은 정보 말고 진짜 책의 진가를 말하는 정보가 서점 곳곳에 있었지. 책을 통해 주인과 손님은 농축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기회가 된다면 주인들과 한 책을 놓고 토론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겨. 잘은 몰라도 그들과의 대화는 정성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야. 서점 안에는 나무 냄새가 나. 냄새가 아니라 향이라 말하는 게 더 맞으려나. 서점 특유의 향이 내 몸에 잘 스며들면 좋겠어. 손님, 주인 할 것 없이 여기에 오는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 보이는 것도 나무 향 덕분이 아닐까 싶었거든. 나는 지금 산으로 둘러싸인 태백에서 나무로 둘러싼 서점에 머무는 중이야. 한 달 동안 서점 안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만으로 태백 전체를 맛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 잘 지내고 싶어. 서점처럼 편안하고 정성스럽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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