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한달살이 : 작가의 꿈
"작가예요?"
북스테이를 갓 시작했을 때 서점 주인은 매일 아침 글을 쓰는 나를 보며 물었어. 겸연쩍게 웃으며 아니라 했지. 대화의 흐름상 나는 뒷말을 이어나갔어야 했나 봐. 조용한 내 앞에서 당황한 주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라고. 그리고 더는 묻지 않고 옆 책상에 앉았지. 우리 사이 어색한 기류는 미안했지만 꼬리 질문이 나오지 않는 건 다행이었어. 더 줄 답이 없었거든.
작가는 아니지만 매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어. 만약 상황에 이끌려 뭐라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면 횡설에서 시작해 수설로 이어지지 못한 이야기로 시간은 늘어졌을 거야. 주인은 괜히 물어봤다고 후회했을 테고. 나는 친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위기에 빠질 뻔했던 주인을 구해줬다 생각하며 혼자 피식 웃었어.
어떤 단체에서 신규 작가의 작품 활동을 돕기 위한 일환으로 일정 기간 숙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어. 그곳에서는 생활비 걱정도 없이 글만 쓸 수 있고, 또 글을 쓰는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며 지낼 수 있더라고. 휴직 후 글을 쓰며 돌아다니던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겠어. 나는 신이 나서 자세한 정보를 알아봤지.
그런데 자격 요건에는 등단 작가라는 말이 있었어.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면 작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후로 내가 남들에게 작가라고 말을 할 수 있으려면 등단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겠더라고. 의기소침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어.
열심히 글을 쓰는 나에게 사람들은 책을 출간하고 싶냐고 물었어. 나는 서점 주인의 질문을 대할 때처럼 답을 잘 못했지. 대화는 또 꿍짝이 맞지 않게 끝이 났어. 아직 생각 정리가 안 된 상태였거든. 그래도 출간에 대한 질문을 들은 것만으로 마음은 들끓더라고. 내 안에 욕심이 이만큼이구나. 속을 알아채기엔 좋은 순간이었어.
스스로를 비난하고 싶진 않았어.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막연하나마 가져볼 수는 있는 꿈이었으니까. 대신, 꿈을 품은 대가로 혼자서 마음 고생할 건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책을 출간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올라오는 만큼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언젠가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들뜨기도 하는 나를 힘껏 안아주면서 말이야. 비교도 위축도 스스로 만든 허상임을 알지만 간절함은 머리보다는 마음을 공격하며 쉴 새 없이 나를 흔들기 충분했어.
나는 작가일까. 그리고 책을 출간할 수 있을까. 여전히 부끄럼이 올라오는 질문 앞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야.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며 답을 찾아보겠다고 말이야. 나는 내가 왜 글을 쓰는지는 알아. 일상에서는 내 생각을 남에게 말하는 게 쉽지 않거든.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를 버리고 착한 척, 모르는 척하며 넘어간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더 많았었어. 이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글은 척하지 않고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야. 가끔은 글을 쓰면서 때가 묻은 나를 느끼기도 해.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출간에 욕심내는 겉멋도 그중 하나겠지. 씻어도 벗겨지지 않는 걸 보면 이젠 나의 일부가 됐나 봐. 본모습이 완벽하지 않아 슬프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그 자체가 내가 살아온 흔적인 걸. 나는 내 글이 딱 나처럼만 보이면 좋겠어. 그래서 여태 내팽개쳤던 나를 그대로 드러내며 사랑하고 싶어.
다시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작정이야. 글이 이런 나를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고. 지금은 여기까지야. 방향을 잡았으니 이제는 잘 걸어봐야지. 걷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이지 않겠어. 좀 더 단단해지기도 할 테고. 내 모습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밥이 될지 죽이 될지는 그때 가서 또다시 생각해 보자고.
요즘 나는 잘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살 길을 찾기도 해. 이 정도면 남들에게는 말 못 해도 혼자서는 작가라고 말해도 될 것 같지? 첫술에 배부르겠냐만은 첫 입이 제일 맛나긴 하잖아. 홀로 하는 작가 놀이만으로도 괜히 침이 나와. 자화자찬도 은근히 내 입맛에 맞나 봐. 그러니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글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고민하며 지내자. 그럼, 언젠가는 날 닮은 책이 날 보러 올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