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한달살이 : 만두
대만은 내 여섯 번째 한달살이 장소야. 이쯤 되니 한 달을 한곳에서 산다는 건 짧게 하는 여행과 다르다는 걸 알 듯해. 현지에 최대한 맞춰 지내려는 내 한달살이 목표에 꼼꼼한 계획은 별로 필요가 없었어. 식당 검색도 닥치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 미리 고민할 거리도 아니고 말이야. 대신 출국 전에 대만 사람들에 대한 책을 읽었어. 첫 장에 만두 그림이 있더라. 나라를 대표할 만한 음식이라 처음 소개를 하나 보다 하고 말았는데 현지에 와서 직접 현지인들을 보니 저자의 숨은 뜻을 알 듯도 했어.
만두는 다양한 속재료를 모두 섞어 얇은 피로 감싼 동그란 음식이잖아. 대만은 여러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한 역사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 시간을 아픈 과거로 보기보다는 잘 섞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더라고. 심지어 일제강점기도 살기 좋았다며 일본인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지. 거리는 한문으로 된 간판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중국 느낌이었는데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일본 느낌도 났어. 차보다 더 많은 오토바이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타고 다녔고 말이야. 하나의 거리에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잘 섞여 있었어. 속이 꽉 찬 동그란 만두 같았지.
"니혼진(日本人)?"
처음 본 사람들은 날 일본인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내 생김이 그쪽인가 봐.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어.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적응하기 전까진 내 외모를 생각할 여유가 없기도 했고 말이야. 며칠 전 집 근처 카페에서 종업원이 내게 물었어. 나는 웃으며 "Korean."이라 했지. 내 얼굴 어느 구석에 일본이 있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중국어와 한국어 사이엔 접점이 없었어. 번역기를 돌리기엔 카페가 바쁘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대만 사람들은 일본을 싫어하진 않는다 했으니 나쁜 의미는 아닐 거라고 마음대로 결론을 내고 말았어.
그날 저녁, 별생각 없이 넘어갈 뻔했던 종업원과의 대화가 뉴스를 보며 다시 떠올랐어. 요즘 한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혐오가 문제가 되고 있더라고. 며칠 전엔 명동에서 혐중 시위가 있었는데 다행히 정부가 제재를 했다 했지. 또, 최근에 중국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마루타로 유명한 731부대 관련 영화가 상영 중이라 혐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어.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분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래도 그 화를 일반 관광객들에게 혐오 감정으로 풀어내서는 안 되는 거잖아. 한국 밖에서 소수로 지내는 입장이 되다 보니 대규모로 일어나는 혐오 감정이 두려움으로 다가왔어. 나라 간 갈등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느꼈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질 것 같았어. 나를 보며 일본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지. 분명 카페 종업원과 가볍게 웃으며 대화한 것 같은데 혐중, 혐일 관련 뉴스를 보고 있으니 내가 상황을 모르고 해맑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더라고. 만에 하나 그 종업원이 731부대 관련 영화를 보고 혐일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간단한 질문 속에 숨은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 뒤에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도 없는 거고. 또, 한국에서 혐중 시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
며칠 동안 사방을 의심하며 지냈어. 현지인들과 하곤 했던 짧은 대화도 가급적 줄이면서 말이야. 어제도 말없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어. 더워서 터덜거리며 천천히 걸었는데 다 건너고 나서도 녹색 신호가 한참 남아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그제야 길 위에 위계질서가 보였어. 걷는 사람 우선인 시스템이었지. 한 번 신호가 바뀌면 차는 90초를 서 있어야 했어. 초록색 신호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숫자를 통해 알 수 있고 말이야. 도보 다음이 자전거고 그다음이 오토바이, 마지막이 차였지. 길만 걸어도 약자가 최우선이란 대만 사람들의 생각이 보였어. 나는 뚜벅이 아니면 자전거를 타는 입장이라 갑자기 고마움이 밀려오더라. 뾰족한 내 마음이 살짝 무색해진 느낌이었어.
카페에 들어와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 화장실을 갈 때 물건을 모두 챙겨 화장실로 가는 사람이 나뿐이었거든. 대만 사람들은 대부분 테이블 위에 컴퓨터, 휴대폰 심지어 지갑까지도 그냥 두고 가더라고. 그들은 서로의 물건에 관심이 없어 보였어. 그렇다면 나도 화장실 갈 때마다 이삿짐을 다 쌀 필요는 없지 않을까. 동그란 그들 옆에서 내 뾰족한 뿔이 더 도드라져 보였어. 다시 무안함이 올라왔지. 그래서 소지품은 들고 가더라도 컴퓨터는 두고 다녀와 보자 싶었어.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갔어. 돌아온 내 자리에 예쁘게 놓여 있는 컴퓨터를 보며 그제야 며칠 가지고 다녔던 두려운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어.
역시 어느 곳이든 시간을 두고 직접 경험해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 같아. 믿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대만인들은 소심한 나를 소리 없이 배려해 주고 있더라고. 덕분에 배려받는지도 모른 채 지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지. 실제로 나는 대만에서 혐한, 혐중, 혐일 감정을 경험하진 않는 것 같아. 지레 겁먹고 내 상상력이 홀로 나래를 펼친 시간은 있지만 말이야. 이쯤 되니 온몸에 잔뜩 든 군기는 좀 빼도 되지 않을까 싶어. 내가 대만을 이해하는 속도만큼 여기서의 생활도 안정감을 느낄 테니까.
한중일 세 나라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면 좋겠어. 각 나라의 본모습을 서로가 잘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실제로 보면 모두 살기 좋은 곳인데 직접 경험하지 않고 소문만으로 서로를 혐오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대만 사람들이 보여주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만두 같은 마음을 배워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나라 밖에 있으니 한국이 더 잘 보여. 중국도 일본도 적이 아닌 이웃이란 생각도 더 들고. 그리운 내 조국이 친구들과 잘 지내면 좋겠어. 그런 의미로 오늘은 만두 좀 사 먹어야겠다. 주인하고 서툰 대화도 좀 하고 말이야. 우선 나부터 동그래져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