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한달살이 : 외국인
교실에서 나만 외국인이야.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게 느껴져. 한국이었다면 자의식이 과잉된 탓이라 여기고 말겠지만 이번엔 느낌이 아니라 사실인 게 틀림없어. 주변에서 중국어가 둥둥 떠 다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 나와 관련된 내용인 건 눈치껏 알 수 있어. 중국어 사이사이에 장난 삼아 내뱉는 '오빠' 소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어설픈 자기 발음이 웃기는지 서로를 보며 사람들이 크게 웃었어. 선생님도 내가 잘하면 "짱"이라 말하며 웃으셨지. 다행히 내가 있는 게 그들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진 않아. 무겁지 않게 낯선 외국인을 받아들이려는 분위기는 티 내지 않는 그들의 배려라는 것도 알겠고. 낯선 대만에서 사람들과 섞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싶었어.
숙소 근처에 있는 요가원을 다니고 있어. 폭염이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선택한 곳이었지. 이열치열이라잖아. 더운 김에 운동으로 땀을 더 내는 게 생기를 잃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길이라 싶더라고. 요가는 아침마다 집에서 영상을 보며 따라한 게 다였는데 요가원에서 하니 깊이가 다른 듯해. 중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남들보다 두 배 더 바쁠 수밖에 없지만 이색적인 경험에 대한 내 호기심도 올라갔어. 이왕에 시작한 거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는 유연성만큼 눈치도 성장하면 좋겠다 싶었지.
작은 학원에 외국인이 느닷없이 들어온 건 그들 사이에서도 작은 화젯거리인 듯했어. 나는 모르는데 요가원 안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을 아는 것 같더라고. 내성적인 나는 뜻밖의 관심으로 생긴 부담감을 애써 수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누르려고 노력 중이야. 총 네 분의 선생님이 요일을 정해 놓고 들어오셔. 유연성은 몰라도 성실 하나만은 자신 있는지라 대만에 온 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요가원을 갔어.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별도로 신경을 써야 하는 학생이 있는 건 부담되는 일이잖아. 내 눈치가 빠르게 작동하면 할수록 선생님들이 편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 다행히 그동안 아침마다 영상을 보며 혼자서 꾸물댔던 시간이 도움이 됐어. '챠투랑가', '사바아사나'와 같은 요가 용어나 눈에 익은 요가 포즈가 제법 있더라고. 역시 하루하루 꾸준히 살면 쌓이는 게 있구나 싶더라.
선생님들마다 가르치는 방식이 달랐어. 다양한 수업만큼 내 근육도 골고루 단련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올라왔지. 그중에서도 나와 더 맞는 수업이 있긴 했지만 대만에 있는 동안에는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수업을 듣기로 마음먹었어. 대만 사람들도 나를 옳고 그름이나 호불호와 같은 잣대를 두고 보는 느낌은 없었거든. 몰랐는데 외국인 입장에서는 참 감사한 눈빛이더라고. 달라서 이미 눈에 띄는데 다르다는 이유로 색안경 끼고 보는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면 이중으로 힘들었을 거잖아. 고마워서라도 수업에 대한 판단 대신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배우자 싶었어.
'이얼쌍스오려치파(일이삼사오육칠팔)'
처음엔 하나도 못 알아듣던 중국어도 계속 반복해서 듣다 보니 저건 숨을 쉬란 뜻이고 저건 무릎을 꿇으란 소리구나 싶었어. 특히, 요가 선생님들은 1부터 8까지를 수업 중 계속 세잖아. 학생들은 숫자가 끝날 때까지 버텨야 하고. 일부러 느릿느릿 세는 선생님 덕분에 나는 중국어 숫자 공부까지 자동으로 하고 있었어.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중국어 숫자 발음이 한국어와 비슷한 게 많아 신기하다며 혼자서 실실거리기도 하면서 말이야. 이쯤 되면 호기심 많은 내가 점점 더 요가원에 빠질 만도 하지?
수업은 끝날 때쯤 매트 위에 누워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 운동으로 긴장했던 몸을 이완시켜 주는 거지. 하루는 누워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었어. 잠시 눈감고 있다가 뜬 줄 알았는데 20분이나 지났더라고. 교실에는 아무도 없고 말이야. 황당했지만 푹 자고 일어나니 얼마나 몸이 가뿐하던지 저절로 배시시 웃음이 나오더라. 이미 온몸은 땀에 절어 있었어. 폭염이 나를 더 절일 순 없을 정도였지. 덕분에 나는 시원하게 뜨거운 바깥으로 나왔던 것 같아. 행복이 별거냐, 땀냄새 폴폴 나는 지금 정도면 되는 거지란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오던 순간이었어.
선생님들은 숨을 깊게 쉬라는 말을 많이 하셔. 요가는 명상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힘든 동작을 하면서도 호흡이 일정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하는 걸 목표로 하거든. 요가와 명상을 동시에 하면 내면을 깊게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대. 지금은 비록 굽은 다리를 펴기 위해 짧은 숨을 낑낑거리며 쉴 수밖에 없지만 그 말만 믿고 계속해 보려고. 요가는 꾸준함이 제일 중요하고 나는 그럴 자신은 있으니까 말이야. 지금 내 목표는 대만을 떠나기 전까지 외국인으로서 받아야 하는 눈길 속에서도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연습을 하는 거야. 나의 다름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기도 할 거라 생각해. 그럴 수만 있다면 한달살이가 끝날 때쯤, 그들의 관심이 부담 대신 고마움으로 다가올 수 있을 거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