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처럼 살기

대만 한달살이 : 없던 입맛

by 마나

대만 한달살이를 시작하며 내 목표는 '현지인처럼만'이었어. 가오슝 여러 곳을 돌아다닐 욕심도 없어서 그냥 한 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싶었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여섯 번째 한달살이라 나름 경험치가 쌓였다고 생각했거든. 덕분에 내가 어디에 있든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었고 말이야. 그렇게 시작한 한달살인데 불행히도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나는 여전히 낯선 이의 모습으로 가오슝에서 부유중이야. 대만을 어떻게 정리하고 떠나야 할까. 계획한 대로 한 달을 채웠긴 했으니 됐다고 스스로 위로라도 해야 할까.


제일 큰 이유는 음식 때문이었어. 대만에는 내가 아는 음식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더라고. 언어도 음식도 몰라서 매일 적절한 식당을 찾는 게 일이었어. 분명 숙소 근처에는 하루에 한 번씩만 들른다 해도 한 달 동안 다 못 가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만큼의 식당이 있었는데도 말이야. 한문으로 된 간판들은 다양한 음식들이 있으니 뭐가 먹고 싶은지 말만 하라고 소리치는 듯했어. 시간이 지나도 선뜻 고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줘도 못 먹을 애라고 타박을 주는 듯도 했지.


매일 도장을 깨는 기분으로 밥을 먹었어. 지난 한 달만큼 밥을 의식적으로 남기지 않으려 했던 적도 없는 것 같아. 한 끼 식사를 하는 것뿐인데 과하게 힘주고 있단 생각이 들지? 그런데 더운 대만에서 지치지 않고 지내기 위해선 음식이 그만큼 중요하더라고. 문제는 현지식이 내 입맛에 맞지가 않다는 거였지. 그렇다고 대만까지 와서 한국 식당을 찾고 싶진 않았어. 낯선 곳에 잘 적응하는 게 내 한달살이 목표인데 입맛이 없다고 한국 음식을 찾아 먹는 건 반칙 같았거든. 친구는 이런 나를 보며 괜한 똥고집이라 했지만 나는 그래도 먹을 만하다며 한 번 세운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식에 익숙해질 거라 믿었던 마음이 슬슬 약해지기 시작했어.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을 찾지 못하는 내가 정말로 줘도 못 먹을 애 같았지. 동시에 미안함도 올라왔어. 뭐가 문제라서 입맛에 맞지 않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즐기지 못하고 식당을 나올 때마다 나는 더 미안할 수밖에 없었어. 가끔 요가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오슝에 대해, 그리고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가봤냐고 묻더라고. 사실 나는 할 말이 없었어. 어디를 가지도 않았고 음식은 매일 살기 위해 먹는다고 어떻게 말하겠어. 대신 잘 안 돌아다닌다며 어색하게 대답할 뿐이었어.


음식 외에는 불편한 게 별로 없었어. 그렇다고 매일 빵을 먹거나 굶지도 않았어. 오히려 더 열심히 식당을 찾아 매일 새로운 음식을 먹었지. 당연히 시킨 음식은 남기지도 않고 말이야. 대신, 다시 먹고 싶진 않아서 나는 매일 새 음식을 찾아야 했어. 그러다 식당 찾는 것에 지치면 집 근처 빵집이나 샌드위치 가게에 가곤 했고.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지만 한국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것만으로 내가 꾸려나가는 대만 한달살이에 대한 마지막 자부심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아. 덤으로 대만살이가 힘든 만큼 내 삶에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도 알 수 있었고. 나는 그렇게 음식을 입이 아닌 머리로 계속 생각하며 살았어. 힘들었지만 올바르게 살고 있는 거라 믿으면서 말이야.


오늘은 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만두 가게를 가 보기로 했어. 입맛을 돋우기 위해 평소보다 좀 더 많은 돈을 점심때 투자해 보기로 한 거였지. 그런데 나는 만두 가게 근처까지 갔다가 바로 돌아서야 했어. 가게 앞에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다 셀 수도 없겠더라고. 얼마나 맛있길래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대만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내려간 상황에서 맛집 앞에서 기다리는 설렘 따윈 느껴지지가 않더라. 그래서 미련 없이 돌아섰던 것 같아. 당연히 입맛 없음이 후퇴의 이유였지.


인생은 참 희한해. 희로애락이 절묘하게 왔다 갔다 하거든. 터덜거리며 걷는 내 앞에 백마 탄 왕자처럼 순두부찌개 사진이 보이더라고. 만두 가게 바로 옆이 한식 가게였지. 순식간에 침이 입속에 고이는 걸 느꼈어. 몇 주 동안 숨어 있던 입맛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그런지 몇 번이나 침을 삼켜야 했어. 나는 여태 고이 모셨던 스스로 정한 규칙을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카운터 앞에 가 있었어. 그리고 그림을 가리키며 순두부찌개를 주문했지. 매콤한 국물이 처음 내 목구멍에 들어오고 마지막 국물이 그릇을 떠날 때까지 나는 그저 그릇에 코를 박고 먹기만 했어. 내가 먹어본 순두부찌개 중 가장 맛있는 것을 대만에서 먹는구나 생각하면서 말이야. 인생은 살면 살수록 한 치 앞을 못 보는 곳이 맞았어.


이성은 순두부찌개를 먹고 나서도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어.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한 후회 대신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먹는 것에만 관심을 뒀거든. 만족스러운 점심에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먹고 나니 대만 오길 잘했네 싶더라. 어이없는 웃음도 나고 말이야.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던 하루는 참 오랜만이었어. 나는 끝까지 후회 대신 만족감을 느꼈지. 올바르게 사는 것도 중요한데 즐길 여유도 필요한 거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듯했어.


남은 기간 동안에는 현지식에 대한 집착, 건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며 지내려고 해. 대만에 있어도 한식을 먹을 수 있고 몸에 안 좋아도 가끔씩 아이스크림 먹어도 괜찮다고 말할래. 결국 완벽하지 못한 한달살이로 끝이 나겠지만 뭐 어때. 훈련하듯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가 죄 없는 대만만 미워하다 떠날 뻔했잖아. 교사 직업병인가. 옆에 학생이 없어서 여태 스스로 교육시키고 있었나 봐. 이젠 그만하자고. 대만 음식과 잘 지내진 못했지만 편견 없이 떠나고 싶어. 색다른 음식을 도전하며 산 시간만으로 의미가 있을 거야. 몰아쳐서 미안해. 그런 의미로 내일은 더 맛있는 햄버거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