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대만 한달살이 : 요가 선생님, 수잔

by 마나

누군가를 이토록 열심히 관찰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수잔을 바라보며 지난 한 달 동안 배운 게 요가 말고도 또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지. 처음엔 단순히 수업을 잘 따라가기 위해 봤었어. 중국어로 진행하는 요가 수업은 귀보다는 눈으로 계속 그를 좇게 했으니까. 미어캣 같은 나를 보며 수잔은 많이 웃었어. 목에 힘 빼라는 말을 영어로 해주시면서 말이야. 나로서는 고개를 숙이면 다음 동작을 알 수가 없고 동작을 제대로 하려면 고개를 들어야 해서 난감하더라고. 그래도 선생님이 목에 힘을 빼라면 꼭 빼고 싶은 게 말 잘 듣는 학생의 마음이잖아. 나는 가끔 혼자서 다른 동작을 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힘을 조금씩 뺐어. 중국어를 한 마디씩 터득할 때마다 한 발짝씩 늦는 동작들도 줄여나갔지.


간절히 보다 보면 정말로 보이나 봐. 수잔의 마지막 수업을 들으며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를 중국어지만 내용을 알 것만 같았어. 하긴, 한 달간 그를 보고 또 봤으니 그가 얼마나 요가를 좋아하고 수업에 진심인지 모를 수는 없지 않을까. 마지막 수업은 이전 수업과 다르지 않았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잔은 수업 중 계속 중국말을 했고 나는 그 말이 끝날 때까지 계속 힘을 주고 버텼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말을 힘겹게 듣다 보면 갑자기 중국어를 터득하곤 했어. 오늘 알게 된 중국어는 '후치', '시치'였는데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라는 뜻 같았어. 여태 긴가민가 했다가 오늘 정확하게 알겠더라고. 덕분에 내 미어캣 수치도 그만큼 줄었지. 이제 수잔에게 딱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조금은 독립해도 된다는 뜻 같았어. 어제 못했던 요가 동작을 오늘 할 수 있게 된 것만큼이나 뿌듯한 순간이었어.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 여태 감사했다고 말했어. 그리고 이제 가오슝을 떠올릴 때마다 바로 요가가 생각날 듯하다고 했지. 수잔은 내 말이 반가운 모양이었어. 한국 돌아가서도 계속할 거라 했더니 요가에 대한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 또,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하는 수업이 특별해서 재미있었다고 하셨어. 참 고마운 말이었지. 선생님에게 외국인인 나의 존재는 충분히 버거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잖아. 남들과 다른 제자를 불편해하지 않고 온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생각해 주셔서 내가 수업 중에 편하게 있을 수 있었구나 싶었어.


"서두르지 마세요."

요가 동작 중에는 하고는 싶지만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 하면 할수록 욕심은 올라오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면 요가 때문에 되레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이 곧 올 것 같더라고. 다른 건 몰라도 요가는 할수록 마음을 비워야 제대로 하고 있는 거잖아 . 그래서 나는 살람바시르사아사나(팔꿈치로 물구나무서기)나, 바카아사나(손목으로 몸통과 다리를 들어 버티기)와 같이 고난도 요가 동작은 꼭 해야 하는 것인지 물었어. 다행히 수잔은 지금 할 수 있는 동작을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요가를 편히 할 수 있는 길이라 말씀하시는 듯했어. 하지 않아도 돼서,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서 좋았어.


나는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어. 수잔은 특유의 편안한 웃음을 보이며 악수도 하고 안아도 주셨지. 분명 내가 훨씬 큰 데 품에 쏙 들어간 느낌인 거 있지. 외국인이고 말수도 많지 않고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만 봤던 미어캣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모습이 그의 마지막이었어. 내가 수잔이었다면 편할 수 있었을까. 좋아하는 마음도 부담스럽고, 싫어하는 마음도 신경 쓰여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힘들었던 내게 수잔은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어. 너무 따뜻해서 하마터면 일 년 휴직 동안 사람들을 피해 살았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을 뻔했다니까.


수잔이 준 대만 전통 사탕 한 봉지를 손에 들고 못다 뱉은 넋두리를 홀로 뱉어내며 숙소로 돌아왔어. 잘 헤어졌다 싶더라. 그의 넉넉한 품이 아직도 생생해. 나는 다시 미어캣이 되어 그 느낌을 자세히 관찰해 봐. 계속 보다 보면 내 품도 깊이를 더해 갈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야. 나에게 가오슝은 요가 그 자체였어. 그 많은 관광지 한 번 둘러보지도 않고 돌아온 셈이지만 아쉽지 않은 건 요가를 통해 사람을 다시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거야. 한 달 진하게 살다가 가. 짜이찌엔(再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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