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한달살이 : 가족
메시지를 보면 바로 연락을 하라고 했어. 반쯤 졸린 눈이었는데 언니가 보낸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눈이 뜨이더라고. 무슨 일인지 몰라 가슴이 두근거렸어. "여보세요?" 언니와 함께 있던 엄마는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어디냐고 물었어. 나는 자기 전이라고 했지. 엄마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했지만 평소 목소리로 돌아오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어. 오후에 통화하려다 엇갈려 못했었는데 그 뒤로 연락이 안 닿아서 갑자기 무섬증이 올라왔다 했어. 한 번 마음이 급해진 엄마 눈에는 내가 다시 연락한 흔적을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았지. 내 안부를 확인한 후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엄마를 보며 최근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납치 및 고문 사건을 생각하셨을 것 같았어.
나도 살펴보고 있는 뉴스였어. 64명의 범죄 연루자들이 어제 캄보디아에서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고 했지. 납치된 사람들은 협박과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해 또 다른 피해자를 낳았어. 대부분 피의자이자 피해자라 수갑을 찬 상태였지. 고문이란 단어는 역사책이나 교과서를 볼 때만 보던 용어라 현실감이 없었는데 이번 뉴스를 접하며 처음 실감을 했어. 이 범죄를 계획한 사람들은 중국인이라 했지. 아마도 엄마는 이 부분을 그냥 넘어가지 못했는지도 몰라. 대만이지만 중국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에 내가 있었으니까. 대만 현지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내가 말로 전하지만 뉴스는 엄마가 눈으로 직접 보는 거라 더 와닿기도 했을 거라 생각해.
걱정에 상상이 더해지면 걷잡을 수 없잖아. 나는 일단 오후 4시만 돼도 숙소에 들어오는 내 일과표를 확인 차 다시 또박또박 알려줬어. 그리고 대만에서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지내는지 어깨에 뽕을 한껏 넣어 자랑을 했지. 기똥차게 잘 지낸다는 둘째 딸의 허풍담을 듣던 엄마와 언니는 평소처럼 무슨 말이든 다 맞장구를 쳐줬어. 우린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농담으로 서로의 불안을 접어가고 있었지. 다행히 분위기는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풀렸어.
자식 걱정은 끝이 없다는 걸 한달살이 생활을 8개월째 하고 나니 알 것 같아. 처음에는 내가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주면 가족들도 점점 편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머리로 하는 계산일 뿐 가족 마음은 한결같더라고. 내가 기다리는 입장이라도 비슷한 마음이긴 하겠다 싶으니 이해는 됐어. 내 역마살이 살아지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불안함은 늘 빚지고 살게 되겠구나 싶기도 했고 말이야. 결론을 낼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잘 지낸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본질을 슬쩍 피할 수밖에 없었어.
나는 떼쓰는 아이처럼 엄마에게 대만에서 돌아오면 김치볶음밥을 해 달라고 했어. 며칠 전부터 눈앞에서 삼삼하게 떠오르는 음식이었는데 이야기하는 김에 덤으로 고백을 한 거였지. 평소에 좋아하던 메뉴도 아니었는데 역시 외국 나오면 집에서 먹던 밥은 다 그리워지는 법인가 봐. 엄마는 웃으며 치즈도 넣어주겠다고 하셨어. 된장찌개도 끓여주시고 말이야. 나는 다른 군더더기는 사양하겠다며 얌체같이 말했어. 그리고 덧붙이지 말고 중고등학교 때 먹던 김치볶음밥 딱 그대로만 해 달라고 했지. 엄마의 마음을 알지만 다 받아주지는 못한다는 딸의 고백이기도 했어.
엄마는 그러겠다고 했어. 나 같으면 해 준다고 해도 뭐라 한다고 타박을 놓았을 법한데 자식 앞에서 부모는 늘 죄인이라 해 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듯했지. 나는 웃는 엄마의 목소리가 가벼워 다행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입 앞에서 나오려고 딸막거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억지로 쑤셔 넣었지.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안 할 거라 다시 마음도 먹고 말이야. 엄마의 마음, 나의 마음, 엄마의 인생, 나의 인생.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엄마와 나. 어떻게 하면 안 미안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모라서, 자식이라서 서로에게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라면 이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자식은 업이라 부모가 더 고생하는 거라며 자조 섞인 말로 합리화를 할 수밖에 없을 듯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