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먹을 게 많네요

거창붓다선원 : 공덕행

by 마나

스님은 다시 밭으로 가시더니 채소 한 바구니를 캐어 오셨어. 분명 보살님이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이젠 먹을 만한 작물이 없다고 생각하셨던 바로 그 밭에서 말이야. 같은 밭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아. 더는 없을 줄 알았는데 스님이 가져다주신 걸 보니 또 건질 만한 게 있다며 보살님은 웃으시더라. 스님 외에 남들 눈에는 버릴 작물이었으니 손질할 것이 보통 것보다 더 많았어. 우리에겐 또 하나의 일거리였지만 스님의 마음이 존경스러워 싫은 마음은 언감생심 들지도 않았지. 배울 점이 많은 스님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다는 마음이 덤으로 들기도 했어.


마음은 마음이고 현실은 막막했어. 얼마나 열심히 캐셨는지 둘이 말도 없이 다듬고 다듬어도 끝이 보이지 않더라고. 벌레도 열심히 파먹은 듯했어. 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사는 듯해. 그럼 나도 열심히 구멍 난 잎사귀를 예쁘게 다듬어야 하지 않겠어. 얼마나 맛있으면 이렇게까지 파먹었을까. 벌레 처지에서 생각하니 구멍 난 잎들이 더 귀해 보이기까지 하더라고. 나도 질 수 없어 열심히 마지막의 마지막인 채소까지 잘 정리했어.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텅 빈 상자와 뻐근한 내 허리가 알려주었지.


며칠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채소가 나왔어. 올해 마지막 샐러드 재료가 될 거라더라고. 샐러드를 좋아하시는 보살님은 다듬어진 채소를 보며 침을 꼴딱 삼키시더라. 옆에 있던 나도 괜히 침이 나오는 거 있지. 오늘 공덕행을 하기 전까진 반찬 제일 마지막 쪽에 있던 샐러드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이제부터는 절로 눈길이 가지 않을까 싶어.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먹어 보면 벌레의 입맛도 알 수 있게 되겠지. 며칠 남지 않았다 하니 더 열심히 먹어 보자고.


절에 있으면 책보다 실생활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아. 스님 한 분의 생각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배움 거리가 된 것처럼 말이야. 샐러드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많은 사람의 힘이 들어가. 공양간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먹는 모든 먹거리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먹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걸 만들기까지는 몇 배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니까. 일하면서 배우는 게 진짜 아니겠어. 절에 들어와 봉사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지만 내가 배워가는 것들이 훨씬 많아.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앞으로는 좀 더 천천히 먹어봐야겠어. 맛으로만 먹던 음식을 고마움을 담아 씹으면 더 달콤할지도 모르잖아. 샐러드를 보며 내가 너를 좀 안다고 뻐기기도 하면서 말이야. 한 끼에 여러 가지 반찬을 먹어. 내가 다듬은 것들이 나오면 내 그릇보다 남들 그릇에 얼마나 담기는지가 궁금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해. 마찬가지로 다른 반찬을 만든 사람들도 식당 어딘가에서 내 그릇을 보며 흐뭇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절 안에서 서로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 그래서 앞으로는 뭐든 더 맛있게 또 감사하게 먹어야겠어. 밥 타령 실컷 하고 났더니 벌써 배가 고프네. 점심 공양 때까지 나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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