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붓다선원 : 집착
절에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어. 10일간 있던 집중 수행이 끝났거든. 원래 조용한 절이긴 하지만 오늘은 좀 을씨년스럽네. 사람의 움직임이 많이 안 보여서 그런 것 같아. 선방에서 아침, 저녁 예불할 때도 내 자리 앞뒤 옆 방석도 다 정리가 되고 나 혼자였어. 띄엄띄엄 서 있는 수행자들과 스님들의 예불 소리가 겨우 합쳐져 절의 하루를 시작하고 끝이 났지. 하긴, 겨울은 원래 이런 거지. 빽빽하게 사람들로 채워진 선방은 바깥 풍경과 안 어울리긴 했어.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외로움을 앙상해지는 나뭇가지를 보며 느껴보기로 했어. 네가 내 마음이겠구나 싶으니 살짝 온기도 올라오더라.
며칠간 잘 지내던 보살님도 오늘 방을 정리하셨어. 아침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생필품 몇 개와 쪽지를 적어 내게 주셨지. 산에는 개인물품을 바로 살 수 있는 가게가 없어서 곤란할 때가 있는데 내가 딱 필요한 걸 넣어주셨더라고. 혼자서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아셨을까 싶더라니까.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는 말이 고마웠어.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땐 전화번호도 주고받자는 말엔 혼자서 웃었지. 나도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거든. 참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진짜로 다음에 다시 만나면 내가 먼저 전화번호 물어봐야겠다 싶었어.
부처님께서는 기쁨 뒤엔 항상 슬픔이 오는 법이라 기쁨도 곧 고통인 걸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 그리고 감정을 받아들이되 집착하진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아이고, 부처님. 정이란 게 움켜쥔다고 스며들지 않는 게 아니잖습니까. 부처님은 그걸 넘으셨는데 저는 그러지 못해서 어리석은 중생 단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가 봅니다. 마음, 몸 모두 변하는 것이니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죠. 사람에 대한 마음도 그래야 하는데 이번에도 저절로 그리되어 버렸네요. 그래서 이제부터 한동안은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 하나 봅니다. 제가 지은 업이니 달게 받아야지요. 다시 애써 보겠습니다.’
사람이 오고 가는 걸 한눈에 볼 수 있는 게 선방에 있는 방석이더라. 좌석이 지정되어 있거든. 보살님 자리가 바로 옆이어서 방석 없는 옆쪽이 유난히 더 휑하게 느껴졌어. ‘그래, 만나서 기뻤다면 반드시 슬플 순간이 온다고 했었어.’ 나는 혼자서 부처님의 말씀을 되뇌었어.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내 자리도 정리가 될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지. 헤어지고 만나는 건 살면서 늘 반복되는 일인데 과정을 알면서도 매번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 아마도 손에 쥔 인연을 놓고 싶지 않은 욕심에서 출발하는 반복일 거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내 불안을 마주 봐. 내 마음에 직면하는 것, 이것이 수행의 시작이 아닐까.
절간이 휑해. 바쁘게 움직이시는 스님들의 민머리도 오늘따라 더 추워 보이고. 절에 들어온 지 20일 남짓 지났을 뿐이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겨울 산에서는 오늘처럼 을씨년스러운 날들이 꽤 있을 것 같아. 앞으로 조금씩 외로움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네. 겨우내 외롭다고 생각만 하며 지낸다면 부처님이 절이 그런 줄 모르고 들어왔냐고 호되게 혼내실 테니까 말이야. 사람 별로 없는 산속 절에서 지내면 외로운 게 당연한 거야. 그냥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무심해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외로움도 나무 관세음보살.